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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종교적 중독을 끊으며 찾아왔다.

기도는 나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by Choi

때때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한다.
'정말 운명이란 걸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걸까.'


로버트 그린의 책, 『인간 본성의 법칙』에 따르면 인간의 뿌리는 ‘감정’이다.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 박힌 이 감정은 삶을 좌우하고, 감정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감정이 가장 집요하게 보호하는 것은 '자존감'이다. 사람은 자신이 믿기로 선택한 것을 지지할 증거만을 찾는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순간 멈춰 섰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반복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비정상 가족’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사회가 정한 가족의 틀을 지키기 위해 나의 상처를 외면했다. 끊임없이 심리학과 분석학을 공부하며, 내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끝없이 찾아 헤맸다. 그 모든 건, 나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고, 그녀가 주입한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이었다.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힘은 '이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았다. 나에게 이성은 감정에 깔려 저 땅끝 어디에 숨겨져 있었다. 이성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감정이나 느낌을 단지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힘이다. 하지만 나는 오랜 세월 이성의 이름으로 포장된 감정과 믿음 속에 갇혀 있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하면 그것이 곧 이성적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이성은 그런 표현의 기술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분별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반복적으로 심어놓은 종교적 신념과 맹목적인 믿음은 나의 일상을 완전히 지배했다. 나에게 이성적 판단을 할 기회는 애초에 없었다. 불교라는 이름 아래 강요된 끝없는 기도와 의식은 내게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강박과 불안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저 그녀가 만들어낸 믿음 속에 갇혀 있었고, 스스로 거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난 '종교적 중독'증세를 심각하게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나의 불안증은 일상생활을 삼켰다. 절에 다녀오지 않으면 하루가 불안해서 집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 종교적 중독,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경계선을 긋는데 3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고통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 현실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내 인생에서 주어진 짧은 하루는 거의 대부분 절에서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 시간은 곧 나의 자유를 박탈하고, 나를 철저히 지배하는 강박으로 변했다. 난 절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는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친구를 만날 수도, 취미생활을 할 수도, 운동을 마음 편히 갈 수도 없었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이 고작 3-4시간 밖에 없는데, 집안일과 일상으로도 벅찼는데, 절에 가야 한다는 강박은 내 삶의 족쇄였다

오죽하면 나는 부처님 앞에서 절규하듯 빌었다.
“절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정말 저의 팔자인가요?, 저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는 건가요?”

돌아보면 그 모습이 얼마나 아팠던가. 하지만 그땐 그 사실을 몰랐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절에 가서 빌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제정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나의 영혼과 몸과 정신은 병들어있었다.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난 벗어날 수 없었다. 난 심각한 PTSD를 앓고 있었다.

진정으로 이성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나 스스로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오랫동안 내가 비이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내 삶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고, 내가 겪은 세상 역시 논리적이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계는 오히려 알 수 없는 운명과 비이성적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극도의 절망과 혼란 속에서 가장 먼저 합리성을 잃어버린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는 한평생 이성적이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토록 오랜 시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믿는 게 아니라 중독된 것이었다. 그녀가 반복해서 주입한 믿음, 맹목적인 신념은 내 삶을 철저히 지배했고, 나는 내 의지대로 사는 게 아니라 그녀의 신념과 욕망을 대신 살아냈다. 하루 천배, 이천배, 삼천배… 그렇게 해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은 내게 신념이 아닌 강박이었다. 난 절에 가야만 하고, 절에 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가스라이팅을 매일매일 당했다. 그녀가 38년 동안 나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말이다. 그녀에게 잘못하면 벌 받는다는 세뇌. 모든 게 나의 업보. 모든 잘못은 나의 무지에서 나온 잘못. 내가 참아야 하는다는 신념. 등등 수도 없이 너무나 많다. 이 많은 말들과 종교적 신념은 나의 영혼을 병들게 만들었고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내가 맞서서 큰소리라도 내면 마장이 씐 것이고, 내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었다. 이 삶이 내 삶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부처님과 절과 연관된 거였고, 심지어 나의 자식과 남편 일도 절에 가지 않아서 잘 안 되는 것으로 해석을 했다. 그녀에게 수행은 권위의 방패로 사용되었다.


내가 아는 절은 그런 곳이 아니다. 깊은 바닷물처럼 슬픔을 안고 절에 가더라도 어느 순간 숨 쉴 수 있는 숨구멍이 트이고, 나의 내면을 검열하며 그 자리에서 고요하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을 보살피는 공간이다. 부처님의 자비와 너그러움을 난 왜 그때 몰랐을까.. 절은 그런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난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우연찮게 넷플릭스에 올라온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를 보면서 황당하지만 우리 집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시작했다. 눈이 뜨인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내 모습이 보였다. 난 깨어나고 있었다. 엄마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내가 믿고 있는 종교는 불교가 아닌 그녀가 만든 권위, 방패적인 불교였다. 정말 우리 집은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종교를 믿고 있었고, 난 그녀에게 이 다큐를 보여주며 그녀 스스로가 너무나 맹목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각하기 바랬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의 충격은 너무나 생생했고, 나 스스로도 내가 그런 종교를 믿고 있다는 현실에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깨달음은 오래된 맹목적 믿음에서 천천히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종교라는 아름다운 가치조차도 비이성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비이성적 신념은 운명조차도 강력히 재구성할 만큼 무서운 힘을 가진다. 그 신념은 때때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철저히 파괴하기도 한다. 내가 오랜 시간 신념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강력한 족쇄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신념이 무서운 이유는 논리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이성적 사고보다 더 깊고 강력하게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불교를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중독이었다. 나는 내가 자유로운 불자가 아니라, 철저히 조종당한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가족과의 경계를 명확히 세운 후, 나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신념과 맹목적 믿음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시작하자, 내 삶은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그 순간을 '이성'이라 부르고 싶다.


삶이란 때로는 가장 익숙했던 것, 가장 사랑했던 것에서조차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나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모든 잘못된 신념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여정을 조용히 기록하며, 나와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힘든 이유는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당신을 괴롭히는 모든 신념과 믿음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나오라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 깨달음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삶이라는 거대한 미로를 벗어나려는 모든 이들의 몫이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나와도 된다고.

괜찮다고.

아프지만,

견딜만하고 이전보단

살만하다고..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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