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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Jan 05. 2023

나도 워킹맘의 자녀였다 2

결핍 - 서럽고 서운했다

엄마가 바빠서 서럽고 서운했다.

서럽고 서운했던 기억은 나에게 결핍을 주었고 결핍은 아직까지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엄마를 생각하면 여전히 반사적으로 서운함이 건드려지는 걸 보면 어린 나는 참 많이도 서럽고 서운했던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엄마 인생의 우선순위 5위 안에 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엄마는  바빴고  일에 열심이었다. 엄마는 선교 일을 하고 있었다. 돈이  되는 (오히려 자신의 돈을 쓰는) 일이었으나 본인이 살고 있는 이유가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사명감을 갖고 헌신했다. 엄마에게 1순위였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했고  일을 했고,  일을 하지 않을  집안일(2순위) 해야 했다 (아빠는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편이었으나 집안일은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고를 가졌다). 시간이 난다 해도 나보다 어린 동생 (3-4순위)이나 다른가족들(5순위)을 챙겨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가정통신문이나 알림장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알아서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왜 학교에서 오는 유인물을 보여주지 않는지 묻지 않았고 어쩌면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엄마는 바빴고 나는 한 번도 내가 엄마 인생의 우선선위 5위 안에 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엄마를 둔 이유로 나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내 살길을 찾아야 했고 덕분에(?) 공부를 잘하게 됐다.

누군가는 "네가 알아서 잘하니까 엄마가 내버려 두는 거겠지"라고 했지만 난 선후관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반에서 3등 안에만 들면 엄마가 무언갈 해준다고 했다. 나는 1등이었지만 엄마는 오늘이 시험인지 이번 달에 시험이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는 내가 1등 인지도 몰랐다. 내가 시험을 마치고 일찍 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으면, 엄마는 왜 학교에서 일찍 왔냐고 물었다. 오늘 시험이라 일찍 끝났다고 하면 그러냐고 했다. 오늘 왜 일찍 왔냐는 무심함에 상처를 받아 정확한 대화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엄마는 인사치레처럼 시험 잘 봤냐고 물었을 것이고 나는 그냥 "그냥 그렇지"하며 입을 닫았을 것이다. 어릴 땐 공부를 잘하면 무언갈 사준다는 엄마를 둔 사람이, 공부를 못하면 엄청 혼낸다는 엄마를 둔 사람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엄마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다.


엄마는 "너는 하나님이 키워주실 거야"라고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그 말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지만, 이 말은 오랫동안 나에게 상처였다. 나도 엄마에게 관심과 챙김을 받고 싶었는데, 엄마의 헌신은 늘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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