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야기
워킹맘의 육아이야기를 볼 때마다 늘 궁금했다.
'아빠는?'
'엄마가 여러 역할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빠는 뭘 하는데?'
아빠의 이야기를 써본다.
자신보다 일로 바쁜 아내를 둔 60년대생 남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일보다 가족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여겼고, 회사원이었지만 야근이나 회식으로 늦는 날도 거의 없었다. 술, 담배를 하지 않았고 친구도 취미생활도 없었다. 아빠의 시간은 늘 일 아니면 가족으로 채워졌다.
사람들은 이런 애처가가 없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 때까지 아빠가 엄마에게 보낸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와 문자를 자주 발견했다. 어릴 땐, 태어나서 처음 본 성인 남자가 아빠였으니 부부는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아닌가 했는데 아니었다.
하루는 나와 엄마가 싸웠다. 나는 내 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 속상해서 울고 있었는데, 엄마도 방에 들어가 울었던 듯하다.
아빠가 내 방에 와서 말했다. 제발 엄마 좀 잘 봐달라고. 너에겐 엄마이지만 아빠에겐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결혼할 때 살면서 울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요즘 엄마가 자꾸 운다고. 엄마에게 너무 모질게 말하지 말라고.
남자가 열심히 바깥일을 하면 여자가 집안일을 하는 걸 "화목한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선교 일을 하겠다고 집안일도 아이들도 돌보지 않는 아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선교 일 자체에는 찬성했으나, 집안일과 "엄마로서의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는 것에만 찬성했다.
하루는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엄마는 없이 나와 동생들만 있었다. 집안은 엉망이었고 아이들은 아직까지 저녁을 먹지 못한 채로 TV를 보고 있었다. 그날 밤, 아빠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애들을 방치하면서까지 일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럼 아빠가 집에서 아이들을 봐주면 되지 않나 혹은 아빠가 직접 돌봐줄 다른 어른을 구하면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아빠는 그 일을 엄마 책임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60년대생인 엄마는 아빠의 화를 듣고 할 말이 없단 표정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온전히 엄마의 책임이라는 듯이.
아빠가 보기에 엄마는 부모의 역할을 못마땅하게 수행했고, 아빠는 그런 여자를 너무도 사랑해서 괴로웠다.
내가 10살 때, 엄마가 아팠다. 응급수술을 했고 문제가 생겼다. 주치의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다고 했다.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는 엄마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잘못했어요. 이 사람이 하는 일 방해했던 거 잘못했어요. 제발 이 사람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남은 시간 이 사람이 하는 선교 일 최선을 다해 함께하겠습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엄마는 고비를 넘겼다. 이후 아빠는 엄마가 하는 일에 가장 적극적인 조력자가 되었다.
아빠의 변화는 엄마와 아빠 둘만 보면 해피엔딩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당시 나에게 있어서는 절망적인 일이었다.
그나마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아빠도 더 바빠졌으니...
그래도 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남녀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건 큰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