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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란 Aug 28. 2021

[사이버펑크] 새로운 신체

 


 자, 여기 우리의 수다쟁이 안드로이드 C-3PO가 있다. 이 로봇은 가끔 삐치기도 한다. 화를 낼 때도 있다. 주인의 기분을 살피며 눈치껏 적당한 (아부성) 멘트를 던지기도 한다. 무사히 돌아온 동료 로봇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하기도 한다. 다개국어로 통역이 가능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 자의적으로 행동한다. 이 로봇은 우리와 같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을 느낀다. 또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C-3PO를 인간으로 인정해야 한다.


 내가 위에서 내린 결론에 보일 반응이 궁금하다. 반감을 갖거나, 터무니없다고 여기거나, 근거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물론 C-3PO를 인간으로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이유를 대자면 이 수다쟁이 안드로이드가 도무지 인간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와 팔, 다리가 붙어있는 모양새가 인간과 비슷하지만 결코 인간처럼 똑같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외관상의 모습을 제외한다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 C-3PO의 행동, 생각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외관상의 이유 때문에 이 안드로이드를 인간으로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물론 더욱 진지한 답변들도 가능하다. 기술적 측면에서의 답변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글은 신체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나의 답변은 단순하게 보이고 직관적이지만 우리가 언제나 간과하는 부분이다. 다른 신체, 다른 몸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몸은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체계 안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한다. ‘은연중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기준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의 순간이 있다. 아이가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던 아이는 거울의 이미지가 자신임을 알게 된다. 아이는 이내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한다. 하염없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자신의 이미지에 매료된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이미지가 완벽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몸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완전한 몸은 가질 수 없다.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아도 삐그덕 댈 뿐이다. 완전한 몸을 가질 수 없어 아이는 소외감을 느끼고 분열을 경험한다. 아이의 자아는 언제나 통합을 원하며 완전함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소외감과 분열은 이후 아이의 무의식에 영원히 자리 잡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즉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는 과정을 거쳐 인간은 자아를 형성하고 자아를 인지하게 된다.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데카르트에게 ‘생각’이 자아를 인식하는 첫걸음이었다면, 라캉은 ‘신체’가 자아를 인식하는 첫걸음이었다. 이 이론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라캉은 육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육체는 분명하면서도 확실하게 존재한다. 육체는 그 분명함에 맞추어 아이가 생각하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게 한다. 육체는 사고체계의 토대를 만든다. 또 그 사고체계를 침투하는 것 역시 육체다.



그렇다면 다음의 영화 도입부를 읽으며 생각해보자. 지금 당장 아침이 밝았다고 가정하자. 창문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알람 소리는 시끄럽게 울린다. 이제 당신은 힘겹게 눈을 뜬다. 아침은 왜 이리 빨리 오는지 모르겠다며 속으로 투덜거린다. 그리고 이내 화장실로 향한다. 어제 밤늦게 라면을 먹고 잤으니 눈이 부었으리라는 각오 정도는 하고 있다. 얼음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 순간, 거울에는 거대한 딱정벌레가 비칠 뿐이다. 인간이었던 당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첫 도입부다. 카프카의 <변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면, 정확하다. 그 소설을 떠올리며 영화의 도입부를 작성해보았다. 소설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게 이 소설의 시작이다. 가족들은 이 벌레가 과연 그레고르가 맞는지 반신반의한다. (반 정도는 믿은 거라면 가족들의 태도는 더욱 잔인하게 다가온다.) 모든 수입을 그레고르에 의존했던 지난날의 다정한 태도는 말끔히 사라지고, 가족들은 더욱 그를 홀대하며 결국 그레고르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레고르가 곤충으로 변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만약 그보다 더 오랜 시간 그레고르가 곤충인 채 살아갔다면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짧았던 몇 달 안에도 그레고르에게는 변화가 있었다. 소설에서 우리는 그의 생각의 틀이 점차 곤충이 가질 법한 생각의 틀로 변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그레고르가 곤충으로 변한 날 그가 잠을 자기 위해 들어간 곳은 소파 밑이었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사실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레고르는 안락함을 느꼈다. 이후 그가 주로 안정을 취하는 곳은 어둡고 좁은 가구 밑이었다. 또 한 가지는 곤충으로 변한 그레고르가 더 이상 신선한 음식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인간이 먹는 신선한 음식의 냄새조차 맡고 싶지 않아 한다. 대신 오래되고 상한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레고르의 변한 모습들은 인간이었던 때라면 생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레고르의 사고방식이 변화한 이유를 아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가 곤충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이 아닌 곤충의 몸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곤충의 몸은 여느 곤충이 그렇듯 좁고 어두운 틈에서 그레고르가 안정감을 찾도록 했다. 또 신선한 음식이 아닌 상하고 오래된 음식에서 만족감을 얻게 했다. 그레고르의 사고의 틀은 점차 곤충이 가진 생각의 틀로 변화했다. 곤충이 가진 몸의 특성은 그레고르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었다. 몸은 자아를 인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몸을 가진 자의 생각도 변화시킨다. 만일 그레고르가 더 오랜 시간 곤충으로 살아갔다면, 후에는 그 자신이 인간인지 곤충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도 새로운 신체와 그에 따른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네트워크는 광대해"


 우리의 몸이 나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계로 신체를 대신하는 사이버펑크 영화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정확히 말하면 <공각기동대>(1995)의 엔딩 이후 쿠사나기의 삶이 더욱 궁금해진다. 새로운 신체를 받아들이는 일이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신체는 정체성의 근간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쿠사나기는 인형사가 등장한 이후 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전의 쿠사나기는 새로운 신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뇌가 한 조각도 없는 전뇌에 고스트가 생긴 것을 보고 큰 혼란을 겪는다. 인간인 자신은 이미 예전에 죽었고, 지금의 자신은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또 다른 인격이 아닌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는 쿠사나기의 혼란을 지켜보며 신체로 인해 사고체계가 흔들리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혼란은 인형사와 융합한 이후 해소된 듯 보인다. 쿠사나기는 새로운 의체를 얻고 밖으로 향한다. “네트워크는 광대해” 쿠사나기가 넓은 도시를 바라보며 읊조리는 이 대사는 어떠한 희망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쿠사나기는 더 이상 이전의 혼란스러웠던 자신으로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신체를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있고, 또 다른 자신이 탄생했음을 느낀다. 쿠사나기에게 자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의 고민은 필요치 않다. 그 고민은 이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광대한 네트워크를 몸에 지니게 된 쿠사나기는 새로운 사고체계를 가질 것임에 틀림없다. 쿠사나기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새로운 몸을 가진 쿠사나기가 향하게 될 곳이 궁금하다. 기존의 신체가 주던 제약은 이제 사라질 테다.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그의 앞에 열린다.






<참고자료>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은 유튜브 '예도TV' <2. 라캉의 자아 / 거울 단계> 영상을 참고하였습니다.


첫 번째 사진: https://tenor.com/view/star-wars-c3po-were-doomed-doomed-we-are-doomed-gif-2129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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