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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란 Feb 26. 2022

<라라랜드> 빛을 좇는 회전목마 속에서


    눈으로 보기에 별은 그리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을 텐데. 그러자 누군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몇 억 광년을 여행해야 닿을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이미 사라진 별일 수도 있지. 찾아가는 도중에 죽거나 아무것도 없다는 걸 발견할지도 몰라. 별은 그런 존재다.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다가도 문득 솟아오르는 허무와 불안을 눌러가며 감수해야 하는 존재. 미아와 세바스찬은 별들의 도시에서 길을 잃는다. 때로는 환상에 가득 찬 채, 때로는 현실이 몰고 오는 폭풍우에 흔들리며 그들은 꿈꾸고 사랑한다.


    낭만을 연상시키는 두 단어 꿈과 사랑은 어딘가 닮아 있다. 쌓아 올리고, 무너지고. 달콤하면서도 쓴 맛이 나고. 빛났다가 스러지고. 꿈이 주는 달콤쌉싸름함을 입 안으로 털어 넣는 와중에 둘은 만난다. 미아는 연기를 좇고, 세바스찬은 재즈를 좇는다. 둘은 멀리 있는 빛을 좇으며 그 빛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서로는 그 모습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가진 것과 같은 열정을 상대에게서 발견한다. 사랑에 있어 발견의 순간은 마치 매혹적인 초콜릿 상자를 찾아낸 것과 같다. 안에 아주 고약한 무언가가 들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당신은 열어보고픈 초콜릿 상자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우선 손을 뻗는 수밖에. 미아의 눈에 세바스찬은 소신 있게 자신의 꿈을 관철시키는 음악가다. 세바스찬의 눈에 미아는 엄청난 재능을 가졌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배우이자 작가다. 꿈은 둘 사이에 끌림을 더하고, 꿈과 사랑은 함께 섞여 들어간다. 두 연인은 서로의 꿈에 하나씩 이정표를 제공하며 사랑에 깊이를 더해간다.



    꿈과 사랑, 약간의 미친 짓 두 가지. 우리의 눈을 가리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만나면 커다란 환상이 피어오른다. 영화에서 이 거대한 낭만은 별빛 가득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수없는 별들이 빈 공간을 채운다. 선망을 담은 채 별을 바라보던 두 연인은 공중에 떠올라 망설임 없이 별 속으로 뛰어든다. 그들은 기꺼이 별을 따라가는 이들이고, 그 속에서 춤을 추는 이들이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은 또 한편으로 불안한 이면을 품고 있다. 꿈과 사랑 역시 환상의 장막을 걷어내고 절망을 몰고 오기 시작한다.  절망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밝은 빛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현실과 타협해야 해. 정통 재즈의 길을 걷는 세바스찬에게 언제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이었다. 세바스찬은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는 말에 어디 해보라는 듯 어깨를 쭉 펴지만, 은연중에 ‘현실’이 주는 불안을 곱씹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결정타를 날린 건 미아와 미아 엄마의 통화였다. 미아의 엄마는 남자 친구에 대해 묻는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곧 재즈 클럽을 열 거라고, 아직 열지는 않았지만 돈을 모으는 중이라며 애써 남자 친구를 보호한다. 통화를 엿들은 세바스찬은 자신과 정반대의 음악을 하는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철저히 돈을 위해서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았든 현실은 언제나 세바스찬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는 이제 철 들 때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꿈을 힘겹게 억누르며 하는 말이다. 


    미아 역시 다르지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변호사나 할 걸. 농담조로 하는 말이었지만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미아의 머릿속에도 현실은 지울 수 없는 존재다. 거듭되는 오디션 탈락 끝에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미아는 일인극을 준비한다. 하지만 관객은 너무나도 적었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연인은 극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연극을 욕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현실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는 것. 미아는 온몸으로 그 현실과 마주한다. 미아는 모든 동력을 잃고 배우의 꿈을 접고자 한다.



    이제 꿈과 관련된 것들은 사랑에 상처를 내기 시작한다. 꿈과 함께 뒤섞여 있던 사랑은 꿈이 흔들리자 힘없이 휩쓸려 간다. 재즈 클럽에 관한 엇갈린 대화는 두 연인 모두에게 아픔을 남긴다. 현실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과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꿈은 서로 충돌하면서 세바스찬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 재즈 클럽의 꿈을 상기시키는 미아의 말은 그동안 품고 있던 혼란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진짜 꿈을 부정한다. 그리고 현실을 따르는 지금이 옳은 길이라며 스스로를 기만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미아는 안타까울 뿐이다. 뚜렷한 소신을 되찾길 바라는 미아의 마음은 그의 연인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다. 꿈과 관련한 혼란은 연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왜곡시켜 결국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다. 꿈을 향한 미아의 새로운 도전 역시 사랑에 상처를 낸다. 미아는 기대만큼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바스찬은 일정을 착각한 탓에 미아의 연극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연인에게서 지지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미아에게 큰 아픔이 된다. 꿈을 기반으로 하여 깊어진 사랑이기에 미아가 입은 상처는 그만큼 깊다.


    그렇게 커다란 환상이 빛을 잃어간다. 꿈은 다시 한 번 방향을 설정하고, 사랑에게 이별을 고한다. 미아는 그의 1인극을 관람했던 캐스팅 디렉터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망설이는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또다시 이정표를 건네주며 그가 오디션을 보도록 한다.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열기로 결심한다. 미아 역시 그에게 이정표를 쥐어준 셈이다. 그들은 다시 한 번 꿈을 향해 발을 옮기지만, 이제는 각자가 되어 꿈을 좇기로 한다. 그 결정을 내리는 동안에 두 사람은 다소 담담해 보인다.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서 나누는 마지막 인사에도 격한 감정 따위는 없다. 그들이 담담해 보일지언정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결코 그렇지 않다.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며


   미아와 세바스찬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빛을 좇는 회전목마 속에 있다. 빛을 따라가며 돌고 돌다 보면 환한 빛에 쌓여있다가 그림자 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사랑을 해도 상상하던 것만큼 언제나 기쁨에 차 있지 않다. 꿈을 좇으면서 항상 웃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샌가 그 밝은 빛에 취해 다시 환상 속으로 젖어들기도 한다. 달콤함과 쌉싸름함을 모두 맛보면서, 별빛 가득한 환희와 엇나가는 궤적을 모두 바라보면서 우리는 삶을 느낀다. 영화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재회 장면에서 오직 미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동시에 배치된 ‘그럴 수 있었던 것’과 ‘그러지 못했던 것’은 확연하게 환상과 현실을 대비시킨다. 거대한 환상을 바라봤던 우리에게 씁쓸함은 아름다움의 크기에 비례하여 커져간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의 아픈 엔딩을 받아들인다. 그 역시 삶이기 때문이다. 따로가 된 두 사람이 말없이 미소를 보인다. 마음껏 춤을 추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나날들이 곧 삶이라는 걸 두 사람은 주고받았는지도 모른다. 침묵과 미소 사이에 별을 좇는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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