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나?
H출판사가 번역 출판한 도서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100 책 중 1위를 했다는 홍보게시물이 페이스북에 떴다. ‘뉴욕타임스’라고 하니 신뢰 점수가 올라간다. 도서실에 비치할 구매목록을 만들고 있었는데 21세기 100대 도서라니 자연스럽게 링크를 열었다. 특히 100대 도서 중 1위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 도서의 상세설명을 들여다보았다. 맨부커상에 노미네이트 됐었고, 가디언지가 최고의 책으로 선정을 했고, BBC도 올해의 소설로 선정했다고 극찬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검증된 것 같아 구매목록에 넣었다. 더불어 나머지 아흔아홉이 어떤 책인지 궁금해져 인터넷서점으로 아예 자리를 옮겼다. 세상에! 100권 중에 내가 읽은 책이 한 권 있다니. 작가 한강의 소설이 포함돼 있어 나로서는 정말 좌절할뻔했다가 살아난 기분이다. 역시 우리 한강 작가 최고다! 뉴욕타임스가 제대로 선정했네. 나는 아주 약간의 부끄러움과 약간의 뿌듯함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마음으로 스크롤바를 아래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던 중, '사은품 이벤트'문구에 손가락이 멈췄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100 책 중에서 도서를 구매하면 캔버스 백을 준다고?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벤트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공간이동을 했다.
색상, 소재, 그리고 제일 중요한 크기까지 내게 딱 필요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최근 장만한 노트북이 제 집을 못 찾고 이 가방에는 세로로 넣어져 노트북 몸체가 밖으로 돌출하고, 저가방에 가로로 넣자니 무슨 양말을 신기듯 꽉 껴버려 노트북이 애물단지가 된 상태가 이만저만 못마땅했었다. 자! 그럼 이제 캔버스 백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책 한 권 사면 되는 거야? 어디 보자, 백 권 중에서 뭘 고른다. 좀 전 검증을 마친 그 1위 도서는 도서실용으로는 적당하나 내 개인책으로는 두꺼워서 탈락- 사서는 오직 책 표지만 본다는 낭설은 사실임-, 직관적으로 제목과 표지가 힙하고, 무엇보다 페이지수가 적은 것으로 한 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구매확정을 하기 전 캔버스백 색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좀 전에는 안 보였던 '꼭! 읽어주세요.' 가방 사진 아래 작은 포인트의 글자가 나타나 내게 말을 건다. '이 책을 포함해서 2만 원이 넘어야 가방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8,000포인트가 차감되는데, 이래도 살래요?' 갑자기 기운이 빠진다. 겨우 골랐는데, 1권을 더 골라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8천 포인트를 써야 하는 급반전의 상황에 놓였다. 1권 이상도 아니고, 2만 원 이상이라는 것도 기분 나빴지만 무엇보다 8천 포인트 차감에서 살짝 화가 났다. 이대로 물러날까도 생각 했지만, 자세히 읽어 보지도 않고 신이 나서 설레발친 나의 불찰로 급하게 민망한 감정을 삭였다. 캔버스백 갖고 싶지? 필요하잖아? 노트북 넣어야지? 전략이 필요했다. 뉴욕인지 시카고인지 100대 책중 가장 저렴한 도서 한 권과 평소 읽고 싶었던 도서를 조합하는 것이다. 거기다 그동안 열심히 사서 읽은 덕에 쌓인 포인트가 지원가능하다고 손짓한다. 나는 결제버튼을 눌렀다.
책을 선택했더니 우연히 사은품이 딸려 오는 것이 아니라, 사은품에 현혹돼 책을 억지로 껴 맞춘 꼴이 됐다. 이럴 거면 그냥 가방을 사면 될 것을, 그런데 그건 또 다른 얘기다. 가방이 책과 엮이면서 선택에 따른 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 예를 들어 맘에 안 들거나 해서 본전생각을 떨칠 수 있다. 그리고 억지로 산 책이 의외로 재밌으면 이 또한 로또 같은 기쁨까지 줄 수 있다. 다음날 새벽에 책이 도착했다.(책까지 새벽배송이라니!) 아니 캔버스백이 도착했다. 책은 안중에 없다. 포장을 뜯어 어깨에 매어보고, 앞뒤, 안팎을 살피고, 노트북을 넣어본다. 넉넉하다. 흐뭇하게 가방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직 택배박스에서 채 나오지 못한 두 권의 책을 후루룩 넘겨 파본여부만 확인하고 책상 위에 안착시켰다.
일주일이 흘렀다. 노트북은 캔버스백에 넣어져 무사히 이동되고 있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캔버스백과 함께 딸려온 책을 비로소 펼쳤다. ‘어우! 뭐야 이 책? 아! 세상에! ’ 굉장한 책이다. 나는 금세 몰입해 읽어나갔다. 억지로 산 책이 의외의 재미를 주니 값으로 책을 대했던 나의 무례한 행동이 조금 무마되는 것도 같다.
주객전도(主客顚倒)되니, 객주전도(客主傳導)하더라. 가방이 좋은 책을 전달해 주어 가히 흡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