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우리 다 죽어
밭 피와 바랭이가 밭 전체를 도배했다. 점령군 밭 피(개기장으로도 보임)와 바랭이로부터 탈출이 시급하다. 이것들이 새싹이던 4월은 아직 땅이 굳어 뽑으려고 하면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그때 제대로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렇게 끊기거나 너무 작아서 나에게 무시당한 잡초의 새순은 처음에는 약 1제곱미터 면적 안에 스무 개쯤 있었을까? 일주일이 지나면 끊긴 것은 더 단단해진 생명력을 자랑하며 빳빳하게 솟아오르고, 작다고 무시했던 새순은 정강이까지 자라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막 태어난 새순이 자리하니 1제곱미터 면적에 마흔 개 이상이 차지하고 있다. 풀들은 군락지를 형성하며 세력을 과시한다. 보란 듯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의 움직임은 나의 예측을 늘 빗나간다. 처음 굳은 땅을 뚫고 올라와 내 정강이까지 자라는 데 걸린 시간만큼으로 계산한다면 다시 새롭게 자란 어린 순도 그 정도 시간을 두고 자랄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애초에 틀렸다. 왜냐하면 나는 밭에서 자라고 있는 어떤 풀보다 아는 것이 없는 무지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날의 기온, 햇빛의 고도, 일출과 일몰 시간, 강수량, 바람의 정도, 어느 것 하나 시간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게다가 밭 피의 뿌리가 땅속 깊숙이 뻗치고 있는지 몰랐고, 바랭이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흙이 한 움큼이라도 있기만 하면 뿌리를 내리는지도 몰랐다. 무지한 초보 밭지기를 삼킬 만큼 키가 커져 존재 자체가 공포가 아닐 수 없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너희들과의 전쟁에 기꺼이 참전해 주마.
한 포기를 두 손으로 감아쥐고 온 힘을 다해 당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고 풀 역시 나를 당기는 듯 힘겨루기에 들어간다. 몇 번을 당겨 땅이 들썩이는 것 같아도 안 뽑힌다. 이제 낫질만이 답이다. 휙! 팔을 휘둘러 탁! 내리치면 밭 피가 팽! 하고 쓰러진다. 쓰러진 밭 피가 볏단처럼 쌓인다. 휘둘러 쳐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힘이 빠져 낫이 줄기에 턱 하고 걸려 기진맥진이 된다. 낫을 잡았던 손이 덜덜 떨리면 그날은 일 다 한 거다.
올해는 8월이 지나도록 농약을 쓰지 않았다. 농약이라 하면 제초제다. 풀에 뿌리면 햇빛에 반응해 누렇게 말려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날씨 좋을 때 뿌려야 의미가 있고, 비라도 오면 다 씻겨나가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약 안 뿌리고 채소를 키워보겠다고 다짐했는데, 밭 피가 꽃밭도 뒤덮고, 오이밭도 뒤덮고, 콩밭도 뒤덮었다. 밭 피는 강력하다. 잡초가 무성한 원인이 있기는 하다. 봄에 밭 전체에 퇴비를 골고루 뿌렸더랬다. 그렇게 삼 년을 봄마다 뿌렸으니 먹든 못 먹든 풀이란 풀은 다 잘 큰다. 특히 잡초의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재작년에는 쇠비름이, 작년에는 냉이가, 올해는 밭 피! 밭 피가 제일 독하다.
‘풀 베다 우리 다 죽어.’
‘덮자!’
‘다 덮어버리자!’
올해는 잡초에 졌다. 추워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년에는 모두 덮어버리리라. 모두 덮어 해를 차단할 거다. 덮는 작용에 땅은 어떤 반작용을 할까? 내년에는 또 누구와 전쟁할지 미리 걱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소원이 있다면 제발 밭 피만은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