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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Jul 09. 2023

데이터에 의존하는 세상

23년 7월 9일 그림일기

나는 위례에 산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마다,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서울 도심 진출길의 상황을 파악한다. 내비게이션 앱에서 목적지까지 약 35~45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면 딱 그 정도의 이동 시간이 필요하다는 내비게이션 앱의 계시(?)를 무시하지 않는다. 평소보다 오래 걸리는 날에는 꼭 도로공사가 있거나, 교통사고가 난 현장을 지나가게 되는 데, 그때마다 내비게이션 앱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비게이션 앱이 알려주는 미래의 모습이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내비게이션 앱의 미래 예측을 믿으며, 하루를 안심으로 시작한다.  


내비게이션 앱의 미래예측은 그날의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여 차선변경을 하고, 가속을 하여도 결국은 도착시간에 큰 변함은 없다. 오히려 내비게이션 앱을 믿고 여유 있게 차선 변경 없이 조급함을 없애고 길을 따라 주행하는 것이 더 마음의 평화와 안정감을 준다.


그날의 내 미래는 출발할 때 이미 결정됐고, 나는 그저 내비게이션 앱만 믿으면 될 뿐이다.


내비게이션 앱은 그저 알고리즘에 불과하다. 내가 가진 정보(출발지-도착지)를 입력하면, 계산식에 의해 미래 '나의 모습'을 그려준다. 그 미래예측을 믿으면 마음이 편하고, 혹여 믿지 않고 나의 개인적 경험과 판단으로 주행 경로를 바꾸면, 가끔 곤란한 미래 - 약속에 늦게 도착하는 미래-와 마주한다. 특히나 처음 가는 곳을 갈 때는 내비게이션 앱에서 알려주는 정보를 신적으로 신봉한다.


최근에 졸업생과의 저녁약속으로 망원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부터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출구를 찾고는 도보로 이동하는 경로에 집중하여 약속 장소로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은 늦지 않게 했으나, 그 재미있는 망원시장을 그저 핸드폰 화면만 보면서 목적지를 찾아갔기 때문에, 그날의 경험은 그저 지하철 - 내비게이션 - 레스토랑으로 이어지는 단절된 기억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활력과 개성이 넘치는 망원시장과 그곳 사람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하는 게 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비게이션 앱은 시간절약, 곧 약속 수행이라는 강력한 메릿(이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점점 더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현대인을 위한 '점성술'이라고나 해야 할까? 점점 내비게이션 앱을 '미래예측'을 위한 '신'처럼 신봉하는 사람과 상황이 늘어만 간다.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나의 삶도 내비게이션 앱에 더욱 의존하는 삶으로 변한 같고, 이를 위해 더 많은 개인 정보 공개를 허용하는 듯하다. 정확한 내비게이션 '신'을 탄생시키기 위한 소소한 개인의 봉사(?) 혹은 기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제공하는 현재 나의 데이터로 미래 예측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개인 정보를 공개하여 내비게이션 앱처럼 공정성이 보장된다고 가정하면, 나는 내 개인 일상 정보를 어느 범위까지 공개 허용할 수 있을까? 미래 질병 예측을 위해 혹은 미래 기대 수명을 알기 위해 혹은 내 미래 삶의 모습을 알기 위해, 내 DNA 정보와 내 일상의 루틴을 공개하고, 그 예측 결과 내가 80살까지 평안한 삶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 결괏값이 나온다면, 나는 과연 과속하지 않고, 차선변경을 하지 않고 심적 평화와 루틴을 지켜가며 남은 여생을 살 수 있을까?


인생 내비게이션 앱에서 인생 여정 지도를 만들어, 항상 선택지마다 최선의 경로를 제공해 준다면, 나는 군말 없이 내비게이션 앱을 신봉하며 특정한 노력도 없이, 생각도 없이, 제시하는 경로를 따라 주어진 일을 하며, 일정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미래가 올까?  


Episode 2: 그런 미래

어제 아침에는 한 휴학생이 카톡으로 이미지를 보내왔다. 인공지능인 미드저니로 내 크로키 그림과 한 인물을 합성(Blend) 시킨 이미지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 그림은 내가 그린 적이 없으니, 저작권이 나에게 있을까? 아니면 미드저니에게 있을까? 아니면 그 작업한 휴학생에게 있을까? 복잡한 감정이다. 내가 그린 기억이 없는 그림이니, 그리고 내가 대상을 해석한 시각도 관점도 전혀 없으니 내 그림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내 그림체를 데이터로 사용했으니, 내 그림인가? 내비게이션 앱처럼 내 그림체뿐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의 그림체를 입력받아, 미래를 그려낸 것뿐이니 내 그림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우리가 경로 정보의 저작권을 내비게이션 앱에 주는 것처럼, 이 작품의 저작권도 미드저니 앱에 주는 것이 어떨까?


Episode 3: 블로그 신(?) 혹은 인스타 신(?)

일상에 내비게이션 '신'을 신봉한다면, 온라인에서는 블로그 신과 인스타 신을 모시고 산다. 내가 블로그 신에게 내 개인 데이터를 콘텐츠 형식으로 변환하여 납부할 때마다, 블로그 신(?)은 조회수와 방문자수라는 데이터로 화답한다. 더 많은 데이터를 갖다 바치면, 그리고 더 많은 다른 사람의 데이터를 소비하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신념 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았다. 어찌 보면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지만, 여럿의 사람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상납하면서 조회수, 방문자수에 행복해한다.

데이터를 생산하고, 데이터에 의존하며, 데이터 사용료와 데이터 소작료를 지불하고, 그 나머지 여유 자금으로 삶을 영위해야 하는 미래인은 각각의 빅 데이터 기업이 제시하는 미래 인생 여정을 신봉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개인의 경험과 생각과 판단을 보류하고, 데이터 기업이 제시하는 인생의 경로를 그저 내비게이션처럼 따라만 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까? 만약 그런 삶을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


짧은 생각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데이터 해킹을 문제해결의 한 방안으로 생각할 것 같다는 예감이 싸~하게 든다. '데이터 해커'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 뉘앙스만 해결한다면, 당장 우리도 데이터 해킹을 위한 고도의 훈련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조바심도 난다. 데이터 해커를 미래직업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부담감은 마치 '마부'가 대세인 세상에서 '자동차 운전기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혹은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데이터 신에 의존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우리,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일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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