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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Jul 09. 2022

3. 취업만 시켜준다면

근데 연봉은 다다익선, 높아야죠



원하는 건 다 해드릴게


학원을 다니며, 디자이너로서 해야 하는 역량은 다 갖추려 노력했다. 전문적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기술은 전혀 없었으므로 타이포그래피 기술과 더불어 기본은 가지기 위해 학원에서 따로 열린 수업을 들었다. 퍼블리싱 수업은 덤이었다. 포트폴리오를 빌드하는 시간과, 그래픽 툴을 배우는 시간, 퍼블리싱을 배우는 시간을 빼고 나면 집에 갈 시간은 없었다. 학원 근처에 헬스장을 끊어서 아침엔 그곳에서 간단히 운동하고 씻었다. 주말이 되어서야 수원 본가에 가서 옷들을 챙겨 왔다. 밥값은 최대한 줄이기 위해 레토르트 도시락을 학원으로 시켰다. 다행히 겨울이어서 베란다에 내놔도 상할 일은 없었다.


학원에 있던 간이침대에서 침낭을 덮고 잤는데, 이때 인생 처음으로 등드름이 생겼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포토샵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던 스킬이 아직까지 기억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이때 툴에 대해 압축적으로 배웠던 경험 덕에 다른 툴을 배우는 것이 두렵지 않아 진 것 같다.


이 시절에 디자이너의 기본 디자인 스킬에 대해 주관 또한 가진 것 같다. 결국 디자이너의 존재 이유 중 큰 하나는 디자인 기본기라는 것을 주입받으며, 몸소 깨달으며, '디자이너'로 목소리 낼 수 있는 중점적인 요소는 최종 아웃풋에 대한 시각적인 설계라는 철학을 갖게 됐다. 내가 주고 싶은 경험에 대해 시각적인 무드와 인상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이너의 필수 역량이다. 그 시각적 설계 역량은 고통스러운 학습과정을 거쳐야 형성된다. 이는 디자인의 완전 전문적인 영역이기에, 내가 만들어낼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요구하지도 못한다. 그걸 몸소 배우려 했던 과정은 '시각 훈련'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새긴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근데 또 실제로 쓰였던 경험이 중요해


많이 배웠던 Do-While 개발자 선생님 두 분


그러나 그 디자인 스킬이 실제 기업에 어필할 만한 것일까 하는 지점에서, 그것을 검증할 만한 경험이 필요했다. 전공자 대비 스킬이 부족한 상태에서, UX와 UI가 이어지며 실제 서비스가 되는 경험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판단했다. 또한 그 경험에서 내가 디자인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검색을 통해 IT 서비스를 실제로 만들어 내보는 해커톤이라는 행사가 많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 '신한 해커톤'이 올해 처음 열리면서도 가장 빨리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청하고 팀빌딩 카톡방에 들어가 추이를 살펴봤다. 서류만 통과할 수 있다면 어떤 팀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 디자이너를 구하는 팀이 있었고, 그간 구축된 포트폴리오를 보내며 조인했다. 개발자 두 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쩔게도 아이템과 전략 모두 구축된 상태였다. 게다가 리더는 동문! 부족했음에도 배우는 과정이니 괜찮다는 팀과 감개무량하게도 함께했고, 서류 통과. 본선에 진출해 밤을 새우며 2박 3일 간 서비스를 만들어갔다. 만들어 갈 때 내가 '신한 톤'으로 아웃풋을 내는 걸 보고, 역시 디자이너 뽑길 잘했어하는 팀원들의 얘기에 어깨가 으쓱했다. 웹과 앱... 처음 개발자와 협업해보는 것이었기에 부족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훌륭한 팀원 분들은 그 짧은 시간 나를 가르치며... 처음 기획한 서비스를 완성했다. 그 참신함과 완성도를 인정받아 우수상(2등!)을 거머쥘 수 있었다.




당시 해커톤이 끝나고 직후에 쓴 글


1. 최적의 디자인이란 잘 정리된 디자인이다. 또한 정리된 규격 속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명확해야 한다. On/Off의 명확함, 최종적으로 각각 플로우의 명확함. 그런 디자인을 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은 정말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데서 나온다. 레이어를 정리하고 개발자가 최선의 루트를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

1. 추가적인 디자인은 그 명확한 그림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

0. 고로, 툴을 배운다는 것은 그래픽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기보다 정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논리적인 소통을 위한 용어를 배우는 것. 우선순위. 그럴듯한 것을 만드는 건 기본 아래에 있는 내 역량이다. 그에 집중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존나 길러야.. 해…)

1. 개발 지식은 필수다. 퍼블리싱이 가능한 디자이너가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 것 같다. 프로세스의 흐름을 이해하면 짧은 시간 내에도 더욱 최적과 최선을 맞출 수 있다.

1. 일을 줄이는 것이 핵심. 정리되어 짧으면서, goal이 명확한 디자인은 훌륭한 이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추가적인 아이디어: 라이브러리가 정확하고 디자인을 위한 프로세스가 정리되어 있어도 디자이너가 할 일은 남아있다. 개발자와 기획자의 Motivation이 그것이다.

1.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철학은 ‘수익창출’에 관한 것이다. 명확한 목표 중의 목표는 비즈니스 모델이므로. 너무도 어렵고 현타 오는 목표지만, 내겐 강점이 있다. 신학은 마케팅이고, 마케팅은 UX 디자인이다. 무슨 서비스던지 쩌는 플로우와 좋은 사람들이 힘낼 수 있는 동기, 이슈가 있다면 훌륭한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고, 우리는 단 하나, PV의 개념만 알고 있으면 된다. 지켜야 하는 PV의 가치가 뚜렷하다면 FV의 청사진은 언제고 어디에서고 발견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Page View가 아니다. 현재가치와 미래가치)

1. 사실 이런 관망하는 태도와 성찰은 디테일한 능력들을 존나 다 갖춘 자의 것이 아닌가 싶다. 장황한 주석들을 썼다 부끄러워 지워버리곤 했다. 경영학의 핵심은 케이스가 없다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실질적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성실을 갖다 바치는 것… 먹물이 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하며 오버 말고 킵 캄 캐리 온하자. 오늘의 관망은 일탈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한 해커톤은 2번째 해커톤이었다. 이전에 오피노라는 기업에서 진행한 그로스 해커톤에 참여해 GA 툴을 공부해 A/B테스트로 실질적 기업 매출에 관여했던 경험이 있었다. 물론 이것도 그냥 참여해봤던 거지만. 협업 경험은 다다익선인 거 같다.)





서비스에 대한 철학 없이 시작했던 동아리


개발자와의 협업을 좀 더 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며 당시 모집하던 IT 동아리에도 지원해 합격해 활동했다. 웹 서비스를 만드는 팀에 배정됐는데, 논의 하에 크롬 익스텐션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어찌 저찌해서 론칭했는데, 내가 중간에 취직해서 이후에 빌런 짓을 많이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끄러우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 시리즈에 풀겠다...



그렇게 시작된 커리어


학원에서 빌드한 포트폴리오 + 해커톤 경험 + 동아리 중간과정

으로 첫 전체적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해커톤에서 얻었던 경험이 그냥 휘발되는 것이 아쉬워서, 아이템의 시장성을 믿고 당시 웹으로 구현했던 프로세스를 유저 인터뷰와 함께 하나의 앱으로 구성했다. 심도 있는 구현은 절대 아니었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유저 니즈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 포트폴리오가 시중에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포폴을 노트 폴리오에서 픽해서 메인으로 띄워주기도 하고 그래서 연락도 많이 왔다.




이력서는 내가 디자이너로서 시장에서 먹힐만한 점을 다 어필했다. 첫 포폴이니, 포폴 자체에선 그래픽적으로도 완성도를 따지려고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이력서에선 그 이외의 플러스알파가 될만한 점, 예를 들면 비즈니스 측면을 더 강조했다. 실제로 학부에서 경영학 학점을 따려고도 했기에... 이땐 특이했을 수도 있는데 요즘은 또 몰라. 이런 측면은 당연해진 게 또 지금의 흐름이다.


지금 포폴이 업데이트가 근 2년 간 된 적이 없기 때문에, 보면 대충 첫 커리어 시작할 때 어땠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다고 어필한 역량이 이젠 너무 당연해진 역량이기도 하고, 사실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역량이기도 한 것 같다. 데이터 등등으로 붙여나가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이력서도 이후 업데이트를 안 했기 때문에 신입으로 지원하시는 분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첨부합니다.

https://tarry-report-803.notion.site/Sua-Kim-83aa4da1a96d4cafabe98df786c6c9f8



아무 데나 지원했지만 결국은 연봉이었다.


포폴 구축이 끝나고  뒤엔, 나이도 나이고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커리어를 시작하는  목표였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봤던  연봉이었다.   때문이었으니까. 또한 어차피 커리어를 시작하는  목표라면, 그중 시작 선이 높으면 높을수록 내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배울 점이 있다고 연봉을 타협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뒤늦게 커리어를 시작한 이상 내게 배울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나는 단기간 연봉을 올리는 것은 그냥 성과를 내는  최선이라고 판단. 대기업은 프로세스가 길어 당장 일을 못할  같아 패스하고 당시 유행이었던 로켓펀치를 통해 초기 스타트업을 노렸다. 서류를 뿌렸는데 다행히도 면접  곳은  합격했다. 그중 가장 높은 연봉을 주는 곳을 택했다. 11월 쯤 디자인 취준을 시작했으니 약 4개월 만의 취업이었다.



그래서 첫직장은 어땠어?


별로였고, 그래서 연봉 인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폭으로 수평이직했다. 연봉이 다가 아닌가보다… 그냥 로켓펀치 열어뒀는데 제안은 간간히 왔다. 그렇게 만나게 된 곳이 라라잡이다. 이 결정에서 서비스에 대한 철학과 구성원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됬다.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시라.


문득 돌아보니, 이제는 돈이 생겼네.

마음껏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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