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들, 살아서 천당가입시다.
많이 울고, 많이 웃었다. 10월 1일부터 2일까지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그 접경 지역 철원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선을 긋기 전에 춤을 추자'는 슬로건으로, 피스트레인에서는 그 특색답게 민간인 통제구역에 있는 월정리역에서 공연도 한다. 라인업 포스터 또한 헤드라이너가 없는 페스티벌을 지향하며, 균일한 글씨체로 담담하게 뮤지션들을 담아내었다.
1박 2일로 다녀올 것을 계획했지만 감사한 인연으로 하루 더 숙박해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넓은 마음으로 숙소를 나누어 준 윤에게 존경을. 급하게 꼬셨지만 기쁜 마음으로 함께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1일 차에 함께했던 열 명의 친구들에게도 무한 감사를 보낸다. 마음이 풍족하니 음악은 더욱 풍성해지고 나는 단순한 즐거움 이상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일상과 이질적인 것들을 골똘히 생각해 본 것. 평화라는 것, 우리 사랑한다는 것, 리듬과 선율과 화성과 그가 빚어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평화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화목한 것.
몇몇 뮤지션의 공연에서 나는 힘껏 오열했지만, 오히려 평화로웠다. 음악을 듣는 내내 찾아오는 분투, 그 시간은 내 안에 있는 과거의 와글와글한 것들과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재차 깨달았다. 아, 평화에는 분투가 필요하구나. 화목에는 기꺼이 울 줄 아는 진실된 노력이 필요하구나. 평화는 새들이 명예로 상징되는 월계잎을 애써 물어다 주는 것. 그 평화는 그저 안락하게 누군가의 머리 위에 있을 월계관을 지켜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나에겐 떳떳하게 월계관을 차지하던 어떤 슬프고 못된 애가 있었지. 음악을 듣는 내내 나는 물었다. 너는 대체 왜 승리의 왕관을 가지고 싶니. 그럴 필요가 없는데. 우리의 손바닥에 그 아름다운 이파리를 가져다 줄 새들이 도처에 함께 살아가는데.
평화는 투쟁인 것 같다. 못난 것들과 화해하기 위해 투쟁을 뗄 수 없다면. 나는 투쟁하는 법을 음악을 빌어 배운다. 음악 또한 투쟁이다. 음악은 균열으로부터 시작한다. 음악은 하나의 소음으로, 적막을 깨며 등장한다. 등장하여 소음과 소음을 잇는다. 그렇게 좀체 화목할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의 맥락을 만들어준다. 모두에게 하나쯤 있을 결핍을 드러내는 것만 같다. 너의 결핍은 '도'의 음으로, 또 다른 너의 결핍은 '미'의 음으로, 어쩌면 소음에 불과할 그 뒤틀림은 드러내므로 이어진다. 그것이 멜로디가 되고 하나의 곡이 될 텐데, 충분히 이어지는 만큼 시간 또한 함께 흘러갈 테니까. 마치 인생 같지. 이다음의 음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균열을 잇는 노력은 이야기가 되며 음악이 된다. 비일상적인 것들, 어쩌면 괴상할지 모르는 그 순간들이 이어지는 노력으로 음악이 된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투쟁인가. 소음과 결핍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가능성을 음악을 통해 가늠해 본다면. 우리의 화목과 평화는 성큼 다가왔음이 틀림없다. 평화를 위해 고통스러운 투쟁을 피할 수 없다고? 우리는 투쟁을 통해 수많은 음악을 만들면 될 일이다. 우리는 분명 뮤지션이 될 거야. 많이 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미숙함으로 점철되어 많은 상처를 흩뿌린 지난날에 대해 생각한다. 수 몇 년간 신경증을 앓으며 온 세상의 아픔을 짊어진 것만 같았는데. 그럼에도 곁에 남아 준 친구들을 생각한다. 즐거웠던 날들이 한순간의 아픔으로 어두컴컴한 날이 되고, 나를 생각하면 복잡해지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보통 유튜브 같은 것들을 보면 생각보다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고들 하던데. 그 정설이 제발 정설이길. 스스로 크게 느끼는 내 나쁜 면들이 사랑하는 친구들에겐 그저 비트 한 조각이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또 아스트랄한 게 유행이어서, 맘껏 분출하며 살아온 내 삶은 또 누군가에게 좋은 소스가 되지 않을까. 하하.
지금까지 함께 해준 친구들 모두 엄청난 뮤지션들이 아닐까 싶어. 앞으로도 갈고닦아 함께 밴드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꿈을 꾸는 데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여전히 미숙하겠지만 또 인생은 길다는 몇몇 선인들의 고백에 의지하려고 한다. 백 년까지 건강히 살기 위해 보험도 비싼 거 들었다. 우리 황혼에는 어디 멋진 곳에 멘션을 지어놓고 음악들을 누리며 죽음을 기다리자.
수빈이(감동의 연속인), 은송이(온 세상의 유쾌가 그의 것), 윤 님!(궁윤이 입에 익어버림, 없었으면 디엠지 불가, 그 자체!), 혜진 언니(많이 못 봤지만 인스타 맨날 염탐 중), 지원이(다정 왕 츤데레, 오길 잘했지?), 미송이(널 알게 되어 다행이야), 다록이(다음엔 퇴사하세요), 우석(환대하는 그, 예쁜 마음), 창훈(시크한데 젤 웃긴 사람), 주연!(왠지 모를 순수함이 따뜻한), 수환이(차곡차곡 애정을 쌓아가는), 연지(나는 네 진중함이 좋아, 하지만 체력을 길러야 하는), 오늘 생일 정성은!(또라이 ㅋㅋㅋ), 대현(우정을 위해 담배를 배우는).
사랑합니다. 너희들이 만약 도끼로 사람을 패 죽여도 네 편이 될 거야. 그러도록 해볼게.
비가 오네. 비가 오는 게 이리도 좋은 일일까.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다. 깨끔한 기분. 또 일상을 향해 가야만 한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 뭔가의 자신감이 차오른다. 살아서 천당에 다다르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수께서는 늘 이야기하셨지. 천국이 너희의 것임이라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왔다고. 예수여, 그렇다고 미리 말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의 선언 이후의 내 역할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리도 설렐 수가 없다.
'살아서 천당 가자'는 말은 2014년(2013년인가?) 신과대학 여학생회장을 지낼 때, 축제에 초대한 김일두가 했던 말이다. 그때는 일두님을 어떻게든 초청하고 싶어서 내 봉사장학금을 예산으로 함께 편성하는 객기가 있었다. 객기로 살았던 그때의 나는 고마운 나들 중에 하나. 그 이후로 일두님에게 한동안 끈질기게 안부를 물었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 중에 또 기억에 남는 한 마디는 '좋은 날 보자'이다. 그 한마디를 겪은 이후로 사람들에게 종종 '좋은 날 보자'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젠 뭔가 알 거 같다. 그 말은 즉슨, '좋은 날'을 만들기만 하면 우린 언제고 볼 수 있다는 말이잖아. 하나님 나라를 말하면 하나님 나라가 오고, 천국을 말하면 천국이 오듯, 좋은 날을 말하면 좋은 날이 온다.
좋은 날을 만들자. 일두님이 이제는 밴드를 만들어 더욱 좋은 날을 선사한 것처럼. 내게 선인이 이토록 많다는 것이 명치를 자꾸 누른다. 감사합니다. 네가 별똥별이 떨어지는 날이 좋다면, 그렇게 만들어볼게. 간헐적으로 작은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을 기획한다면, 오늘의 평화로운 나를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 마음가짐을 가지면, 앞으로의 일상에서도 좋은 날들이 꽃필 거라고 생각하니 좋다. 마음에 손을 얹고 싶다. 너는 변신할 수 있어. 작은 전도사가 될 수 있어.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여 조그만 천국들을 만들어야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시 두 편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하나는 내 삶의 지침으로 삼은 시이고, 하나는 집에 오는 길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서 발견한 시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여러분, 행복하기로 해. 그러나 그 행복은 예민한 것이기로 해. 저도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한다고 선언하겠습니다. 사랑을 선언하면 사랑이 되지요, 이 말은 제게 비단 애정뿐 아닌, 사랑의 많은 부산물들을 감당하겠다는 멋진 말입니다.
사랑이 있을 것이여. 통일도 있을지도 모르지.
미래가 쏟아진다면 - 김소연
나는 먼 곳이 되고 싶다
철로 위에 귀를 댄 채
먼 곳의 소리를 듣던 아이의 마음으로
더 먼 곳이 되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할까
꿈속이라면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악몽을 꾸게 될 수도 있다
몸이 자꾸 나침반 바늘처럼 떨리는 걸로 봐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몸이 자꾸 깃발처럼 펄럭이는 걸로 봐서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을까 봐 괴로워하면서
무녀리로 태어나 열흘을 살다 간
강아지의 마음으로
그 뭉근한 체온을 안고 무덤을 만들러 가는
아이였던 마음으로
꿈에서 깨게 될 것이다
울지 마, 울지 마
라며 찰싹찰싹 때리던 엄마가 실은
자기가 울고 싶어 그랬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가 될 것이다
그럴 때 아이들은 여기에 와서
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꿈이라면 잠깐의 배웅이겠지만
불행히도 꿈은 아니라서 마중을 나온 채
그 자리에서 어른이 되어간다
마침내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은 채로
지나가는 기차에 손을 흔들어주는
새까만 아이였던 마음으로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기차가 되고 싶다
목적 없이도 손 흔들어주던 아이들은
어디에고 있다는 걸 알고 싶다
국경 마을 내 친구들 - 문정희
이상도 하지, 어린 시절 코 흘리던
내 친구들 모두 여기서 만난다
흑해 부근 긴 철책 따라 늘어선 국경 마을
자라기도 전에 벌써 늙어 버린 아이들이
눈알을 번뜩이며 나를 에워싼다
친구보다 원수라는 말을 먼저 배운
맨발 벗은 친구들
탄피 주워 소꿉놀이하던
한국 전쟁 후 어린 들개들
모두 여기 와 있다
무슨 선물을 좀 주나
미군 트럭을 따라가며 얻어먹은
껌과 초콜릿 대신 K팝 사진이라도 줄까
가방을 열기도 전에 피 튀기는
살육전이 시작된다
옛 친구들에게 울 듯이 소리친다
제발 그만 둬, 사우스여 노스여
언제 한번
언제 한번
진짜 아이로
진짜 사랑으로 살아 볼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