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바빴고 바빴으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냥 버릇처럼 늘 익숙한 취미를 즐겼다. 겨울에는 스노보드를 탔고, 여름에는 웨이크보드를 탔다. 가끔 시간 나는 주말에는 쉬거나, 혹은 뭐 다른 어떤 것을 했을 것이다. 등산에 대한 갈망은 계속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큰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게 참 두렵고 어려웠고, 무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밥 먹자고 이야기하는 소녀 같은 우리 엄마에게, "엄마, 우리 등산 갈까?" 하고 말을 건넸다.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등산을 참 잘하셨다.
여동생이 결혼하기 전, 남동생과 넷이 다녀왔던 제주도 여행에서 엄마는 쪼리를 신고 영실코스를 오르셨다. 등산객들이 수근수근하며 엄마 이야기를 참 많이 헀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뒤에서 우리 엄마신데 발톱을 다쳐서 그렇다고 놀라지 마시라 했었다. 그때의 엄마는 참 젊었고 건강했다.
2020년 10월 24일. 가을이 깊어지는 날, 나는 엄마와 청계산에 오르기로 했다. (지금 글 쓰면서 확인해보니, 아련한 추억이 있는 날이기도 하네. 언젠가 브런치에 내 연애일기도 써봐야지) 이 날 온도는 3도~14도였다. 꽤나 쌀쌀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네.
집에 있던 686 보드복과 여동생의 등산화를 꺼내신었다. 지난 겨울에 사뒀던 베이스레이어(폴라텍) 위에 나이키 드라이핏 셔츠를 겹쳐 입었고 레깅스에, 보드 양말을 신었다. 꾸준히 겨울 스포츠를 해왔던 터라 그나마 기능성 의류를 조금 갖춰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고, 그냥 저 차림에 가방도 없이 물 한병 달랑 들고 갔다. 엄마가 그냥 오라고, 아무것도 챙기지 말라 하더라고.
청계산 입구역에서 만난 엄마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챙기지 말라더니, 이것저것 잔뜩 싸들고 온 모습에 나는 괜히 툴툴댔다. 아니 뭐 무거운걸 이렇게 싸들고 와. 난 착한 딸이 되고 싶지만 착하지 못한 딸이다. 늘 말이 곱게 안 나간다. 내 성격은 못돼 처먹은 게 분명하다.
청계산 매봉으로 바로 향하는 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길이라고 봤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옥녀봉으로 향했다. 금방 가고 편하게 갈 수 있다고 해서. 나는 예전 영실코스에 올랐던 엄마의 체력을 생각하고 긴장하며 등산을 시작했다.
이상했다. 엄마가 자꾸 뒤처졌다. 힘드신지 자꾸 쉬어가셨다. 행여나 내가 쫓아갈까 싶어 정신없이 가다 보면 엄마는 저 뒤에서 숨을 고르고 계셨다. 뭔가 이상해. 불안했다.
"괜찮아?"
걱정스레 묻는 내게 엄마는 괜찮은데 요즘 조금만 걸으면 숨이 찬다며 웃으며 대답했다. 가방을 달라고, 내가 메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하던 엄마의 가방을 억지로 뺏어 들었다. 제법 나가던 무게. 괜히 또 한소리 했다.
"뭐야 왜 이렇게 무거워. 뭘 싸온 거야 대체."
엄마는 재밌잖아~라고 대답하며 또 그냥 웃으셨다. 이렇게 무거운 줄도 모르고 그냥 앞만 보고 갔던 내가 좀 한심해졌다.
나는 엄마의 뒤에 섰다. 그동안 몰랐던 엄마의 모습.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천천히 엄마와 호흡을 맞추며 오르다보니 옥녀봉에 도착했다. 아 뭔가 아쉬운 짧은산행. 엄마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이게 끝이야? 라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