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1주일에 한 번은 등산을 하겠어!!그리고 그 생각이 곧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가만히 쉬고 있던 나는 내일 등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첫 혼등의 시작은 북한산으로 시작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가까울 거 같아서? 혹은 사람들이 좋다고들 하니까? 그리고 서울에 있는 국립공원이니까 편하겠거니. 서울 산 중에 제일 좋다는 북한산이니까 좋겠지 뭐 그런 생각.
내가 고른 코스는 도선사 코스였다. 북한산 등산코스로도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코스였기 때문이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본 대로 나는 북한산 우이 역에 내려서 도선사까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선사까지 택시 안 타면 30분 넘게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오전 9시 53분. 도선사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봄 날씨가 참 좋았던 날이었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숨 막히는 돌길, 백운대까지 최단코스라 그런지 꾸준히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생각보다 힘든 코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가파른 길도 아닌데, 당시의 나는 체력적으로 많이 많이 부족했던 상태라 정말 힘들다는 생각만 계속했던 거 같다.
1시간여를 걷자 인수암이 나왔다. 이제 다 왔겠지, 처음으로 생각한 것 같다. (아직 멀었는데)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뒤 론 사진 찍을 기운도 없이 헉헉대며 백운대 생각만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나오고, 숨이 차고. 적당히 쉬어가며 앞을 보며 길을 따라 오르기만 했다. 혼자 하는 등산은 이런 게 참 좋더라.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내 두발에 의지하며 걷고 또 걸을 수 있어서.
다시 1시간 정도를 오르자 백운대에 길게 늘어선 정상 인증사진 줄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 나는 사람들을 따라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섰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등산 인구가 많았던가, 새삼 놀라워지는 날이었다. 백운대까지 오른 길을 생각해보니 내 기억엔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북한산을 왜 좋다고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던 날이었다. 20여분을 기다려 나는 백운대에서 첫 혼등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정상에서 보이는 탁 트인 북한산의 뷰는 '아 오늘 참 잘 왔다.' 싶은 마음이 들긴 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사람들이 여길 왜 좋다고 하는지 뭐 때문에 북한산이 최고라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길 왜...
사실 북한산에 오기 전 태백산과 비슬산을 다녀왔던 터라 나는 지방산들이 훨씬 좋은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힘들기만 하고 좋은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주변에 왕왕하고 다녔다.
사람들이 다 사진을 찍길래 따라 찍은 북한산 오리바위.
이 때는 이게 오리바위인 줄도 몰랐었다.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면 되니까, 원래 등산 초보일 때는 하산이 더 편하더라. 아직 관절이 쌩쌩할 때라 그런지. 도선사를 지나 도로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벚꽃이 아직 피어있었다. 힘든 산행을 지나 내려오면서 만난 산의 고운 풍경들이 오히려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으면서 첫 북한산 산행을 마무리했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북한산을 찾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북한산은 재미없고 힘든 산이었다. 주변의 산우들은 북한산을 가면, 우리나라 산을 다 탈 수 있다고들 말했다. 아 정말?이라고 반문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북한산은 다신 안가.
이후 내가 북한산 횡 종주를 하면서 깨달았다. 산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그 산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비록 지지부진하고 힘든 산행코스라 할지라도 그 산이 품은 또 다른 모습은 그것과는 정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을.
사람 또한 그렇지 않을까, 내가 보고 있는 단편적인 부분이 꼭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아니지 않았을까.
가끔 산행을 하고 나면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곤 한다. 이런 것들도 내가 산을 찾게 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