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썼다. 대단하다.”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로도 충분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들으니 인정과 보람이 차고 넘쳤다. 긍정의 기운은 이대로 쭈욱 갈 것만 같았다. ‘에세이 출판사’를 검색해보고 ‘투고’라는 단어가 들어간 글을 찾아 읽었다.
수십 개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개인별’에 체크해 일괄적으로 보내는 방법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수많은 경험자들이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거니와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소모적인 행위 같았다. 일상의 따뜻한 이야기에 관심을 주는 곳, 유명한 작가의 책만 취급하지 않는 곳, 여성/엄마/주부의 책을 출판한 적 있는 곳, 표지와 내지 디자인이 내 취향인 곳, 인간적으로 끌리는 에디터가 일하는 곳 등. 나름의 기준에 따라 출판사를 두 군데 골라 이메일을 보냈다.
‘투고’라는 검색어에 걸려 읽게 된 누군가의 경험기에 적혀 있었다. 모든 출판사에 한 번에 보내지 말고 일정 간격을 두고 몇 군데씩 나누어 투고하되, 정말 원하는 출판사에는 좀 더 나중에 보내는 걸 권한다고. 이유인즉, 피드백에 따라 혹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출간기획서가 점차 보완되고 발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나 설득력 있는 조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족이 과했던 초짜 투고인은 가장 원하는 출판사에 제일 먼저 메일을 보내고야 말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수신확인을 했기 때문에 마치 1일이 1주일처럼 흘렀는데, 2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읽지 않음’ 상태다. 출간기획서 초안과 AI처럼 쓴 이메일이 부끄러워 그 상태인 게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하다. ‘읽지 않음’에 안도하기 위해 여전히 하루에 한 번은 수신확인을 한다. 그래도 좀 읽어나 봐주지...하는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다.
아는데, 부족하다는 거 알거든. 그런데도 말이야.
내 소중한 원고를!!! 검토는커녕 클릭조차 하지 않는!!! 출판사에 서운함이 생겼다. 원래 이렇게 수신확인도 안하는 건지, 괘씸하고 궁금해서 다른 두 곳에 메일을 더 보내봤다. 좀더 손질한 출간기획서와 좀더 스토리가 있는 메일 내용으로 애를 썼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더해졌다. 처음 두 곳에 비해 나중에 보낸 두 곳은 1~2일 만에 ‘읽음’ 상태가 되었다. 답이 없는 건 똑같다.
공들여 썼는데, 읽어달라고 사정하는 데 더 큰 공을 들여야 하는 현실에 의지가 좀 꺾인 게 사실이다. 출판사 관계자가 ‘나’라는 존재에 호기심을 갖고 원고를 읽도록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명함’이 나에겐 없다. 글을 열심히 쓰는 것으로 글쓴이의 몫을 다 했는데, 기획에서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짜내야 하는 건 에디터의 몫을 떠안는 것 같아 부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더더 글의 완성도를 높여서 공모전에나 계속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이 차라리 날 편안하게 했다. 공모전 신청서를 작성할 때는 내 배경을 묻지 않았다. 글쓰는 것 말고 ‘그밖의 능력’을 묻지 않았단 말이다.
만족 - 자만 - 현타 - 서운 - 부정 – 현타
앞의 현타는 ‘현실 자각 타임’의 의미고, 뒤의 현타는 ‘현실 수용 타임’의 의미다. 에디터들의 답신을 기다리는 대신, 브런치에 올라온 다른 에디터들의 글을 읽으며 답을 얻었다. 도서관과 중고 서점에서 훌륭한 에세이들의 책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책임한 욕심이 덜어졌다. 2주 동안 일련의 감정 변화를 겪고 나서, 보다 객관적으로 기획안과 원고를 다시 - 손보기 위해 뛰어들 자신은 아직 없고 -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절로 납득 중이다. 투고 메일에 답하지 않는 출판사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몇몇 책을 읽는 동안 꽉 조인 마음이 느슨해졌다. '글보다 콘텐츠'로, '작가보다 크리에이터'로 시야를 넓히니 책 아닌 다양한 매체의 존재감이 보인다. 투고에 힘빼지 않아도 될 공유방식도 눈여겨 보게 된다. 왜 꼭 책이어야 하는지를 자문하면서 꼭 책일 필요가 없음이 점점 분명해진다. 책으로 나와야한다면 그만큼 값어치를 하는 글이어야 하는데, 책으로 붙박아버릴 정도로 내 글이 절대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지도 않다.
탈고하면 한시름 놓을 줄 알았다.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고 속이 뻥 뚫려 시원할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했으니, 나아가는 길 위에 있다. 타협과 긍정 사이 어디쯤이다. 너 자신의 무지를 알아야 한다는 텔레스형의 말을 새기면서도 나의 최선을 과소평가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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