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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as Mar 04. 2023

2. 살고 싶은 곳에 사는 거, 욕심인가요?

내 소울 컨츄리는 어디에


선샤인 코스트에서 보내는 두 번째 편지.



Woolgoolga -> Gold Coast

호주에 와서 살게 된 첫 동네인 울굴가, 정말 떠나기 싫었지만 떠나왔어요. 어쩌다가 흘러왔는데 사랑에 빠져버린 느낌이었거든요. 다른 곳들이 영 아니어서 울굴가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내가 선택한 도시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싶었어요. 발을 들이는 순간 딱 느낌이 오는 그곳이요. 많은 친구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올라스는 서핑 좋아하니까,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골드코스트가 딱이네."

어디로 가볼까 생각하다가 친구들이 얘기하던 골드코스트에 왔어요. 골드코스트 : Gold Coast는 퀸즈랜드 주에서도 큰 도시 중 하나예요. 그중에서도 해안 도시인데 골드코스트는 그 유명한 서퍼스 파라다이스 : Surfers paradise가 있는 곳이기도 해요. 콥스하버에서 밤 기차를 탔어요. 중간에 카지노 역에서 버스로 환승을 하고 새벽 4시 반에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도착했지요. 이른 시간이라 숙소에 체크인하기 미안해서 바다 앞 계단에 앉아 18kg 배낭과 기내용 캐리어 그리고 앞배낭을 옆에 두고 일출을 지켜봤어요. 아름다운 일출을 보면서 아드리안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 나 드디어 서퍼스 파라다이스에 도착했어. 일출이 굉장히 멋지다!


아침 시간을 세 개의 짐과 함께 바다 앞에서 보내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더라고요. 어깨가 너무 아프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와서 피곤했어요. 맥모닝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가서 12달러짜리 맥모닝 세트를 주문하고 e-book 리더기를 꺼내 책을 읽었지요. 시간이 정말 안 갔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7%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아, 조금 더 지체하면 큰일 나겠다- 싶어 숙소를 찾아갔어요. 숙소는 단기로 잡았는데 집을 빼기 전 일주일만 살 사람을 구하는 글을 보고 하루에 35불씩 내고 살기로 했지요. 


그런데 이게 영 정이 안 가는 거예요. 맥도날드 앞에서 도로에 자리를 잡고 앉아계시는 비키니 입은 할아버지를 버스 타고 20분 떨어진 숙소 근처에서 또 마주쳤어요. 어랏? 쌩쌩 달리는 차들, 쌀쌀한 사람들, 휴양지답게 바글대는 사람들 그리고 그만큼 수상쩍은 사람들. 누군가에게는 그래서 더 재밌는 동네라고 느껴질 테지만 저한테는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 동네가 되었어요. 


앞으로 7일을 지내야 하는 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타오르는 사명감으로 버레이헤드, 커럼빈 비치를 탐방했어요. 파도는 어떤지, 마을 분위기나 집세 등등. 가격이 괜찮으면 바다와 거리가 먼 내륙에 있고 위치가 좋으면 집값이 너무 비쌌어요. 차를 사는 건 제 선택지에 없었기 때문에 제약이 많더라고요. 차를 사면 당연히 훨씬 편하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겠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치기도 싫은 제 마음, 까다롭다고 생각하시려나요. 제 시력이 양쪽 다 0.2 정도 거든요. 근데 안경이나 렌즈를 잘 안 껴요. 약간 뿌옇게 보는 걸 선호하기도 하고 눈에 뭔가를 착용하는 게 불편해서요. 차가 있어서 갈 수 있고 볼 수 있는 걸 놓치더라도 제 가까이에 있는 것들 만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생생하게 천천히 보고 싶어요. 그래서 뚜벅이를 할 수 있는 때까지 고집해 보려고요. 


2023.01.28.





Gold Coast -> Brisbane

그렇게 7일을 보내고 이동한 곳은 브리즈번이었어요. 갑자기 뜬금없이 퀸즈랜드 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오게 된 이유는 누사에 가기 위해서는 꼭 들러야 했기 때문이에요. 브리즈번을 중심으로 위로는 선샤인코스트, 아래로는 골드코스트. 다 같은 교통카드를 사용해요, 고카드 Go card라는. 트램을 타고 기차를 타서 브리즈번 사우스뱅크에 도착했어요. 어랏? 이 도시 뭐야, 정감 가는데?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낙후된 건물과 도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멕시코시티 같기도 하고 곳곳에 울창한 숲이 있는 걸 보면 발리 같기도 했죠. 


꽤 마음에 들었어요. 좋아, 여기 며칠 더 머물면서 입사 지원도 하고 도시 구경 실컷 하다가 가자- 싶은 마음에 3박을 묵기로 결정했어요. 브리즈번 뮤지엄, 미술관, 인공해변, 시티홀... 시골에서는 할 수 없는 문화생활을 마음껏 즐겼어요. 아, 친구가 맛있다고 추천해 준 마라탕 집에 가서 마라탕도 먹었는데요. 고수와 마라의 찐한 맛이 최고였어요. 셀프로 재료를 담아 무게를 재서 조리해 주는 곳이었는데요, 꽤 많이 담았는데 한 그릇을 뚝딱 해버렸네요. 


2023.02.01.






Brisbane -> Noosa

브리즈번에서 가장 열심히 한 일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Job apply를 한 일이었어요. 리테일, 바리스타, 키친 등 다양한 곳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다양한 직업을 알게 됐어요. 크루즈 승무원, 소젖 짜기, 멸종위기 동물 보호하는 일 등등 할 수 있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더라고요. 호주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선샤인 코스트, 아니 누사로 향했어요. 숙소가 꽤 비쌌어요. 다른 지역보다 두 배나 비쌌지만 꿈의 목적지였으니 돈을 쓰기로 결정했지요. 1박당 65불이었는데 숙소 컨디션은 괜찮았지만 룸메와 벙커베드 하나를 65불 주고 렌트했다며 미친 물가에 대해 토로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누사인데. 오자마자 짐 던져두고 바로 바다에 갔다고 얘기하면 놀랍지도 않지요? 하핫. 숙소에서 소프트탑이긴 했지만 보드도 공짜로 빌려주고 셔틀도 운영하더라고요. 1000퍼센트 만족했어요. 게다가 주말에 무료로 운행하는 동네 버스 노선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Free weekend bus라고 커다랗게 쓰여있어요. 둘째 날 일요일에만 열리는 마켓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이미 20분을 걸었고, junction에서 버스를 타고 가느냐, 걸어서 가느냐의 선택지가 있었어요. 버스는 15분을 기다려야 하고 걸어서는 20분이면 도착해요. 평소 같았으면 그냥 걸어서 갔을 텐데 제 다리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걸 택했어요. 


- Thank you. Have a good day!

- You, too!

일상적인 대화였지만 '나를 위한 선택'의 결과가 상쾌함으로 이어졌어요.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쉬려고 했었는데 힘내서 서핑을 하러 가기로 했어요. 전날의 서핑은 여기저기 상처만 남긴 최악의 서핑이었는데 오늘의 서핑은 최고였어요. 이렇게나 다른 경험을 하다니. 이렇게나 다른 바다라니, 이렇게나 다른 기분을 느끼다니! 그래서 매력적인, 서핑이라는 걸 취미로 가진 제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죠. 잘했어, 잘하고 있어-


2023.02.05.





Noosa -> Sunshine Coast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는데 그중 딱 한 군데 연락이 왔고 한 번 더 이동해서 선샤인 코스트에 위치한 리조트에서 하우스키핑을 시작했어요. 리조트에 머물면서 손님들이 묵은 방의 침대 시트를 벗기고 새 걸로 교체하고 객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에요. 친구들은 하우스키핑? 그게 네가 하고 싶은 거야? 퇴사는 왜 했어? 크리에이티브? 하우스키핑이 크리에이티브한 거야? 반문했지만 일은 상관없었어요. 오래 걸리지만 휴무날 대중교통으로 제가 좋아하는 바다에 갈 수 있고, 무엇보다 일이 생각보다 꽤 재미있거든요. 매일 파트너가 바뀌는데 그 말은 바로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일하면서 파트너와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누군가의 삶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도 나와 다른 부분에서 경이와 존경을 느끼기도, 혹은 안도감과 연민을 느끼기도. 나와 같은 부분에서는 손뼉을 치며 공감하기도, 그래서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요. 왜, 불평이라는 건 끝도 없잖아요. 저는 이 안에서 불평 대신 창조를 선택했어요.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제 방식대로 만들어가는 것, 그게 크리에이티브한 거 아니겠어요?


저는 제 스스로를 떠돌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역마살이 낀 유목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곳에 오래 머물 수도 있겠어요.




2023.02.25. 호주에서 2개월 만에 아홉 번 이사하게 된 olas가.


해변에 가면 볼 수 있는 beach report
Free weekend bus 엄지척 하고 있는 버스 기사님을 찾아보세요.
리조트에 사는 캥거루들
Noosa
Essay in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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