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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Jun 16. 2023

포춘쿠키를 좋아하시나요?

사실은 지금 내가 듣고 싶은 말

미국에서 판다익스프레스를 좋아했다. 판다익스프레스는 로고에 귀여운 판다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미국에서 만든 중국식 패스트푸드점인데 미국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곳 중 하나다. 양 많고 저렴한 데다가 맛도 있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주문을 하면 포춘쿠키를 준다는 거다. 여느 다른 포춘쿠키처럼 또각 반을 쪼개면 글귀가 적힌 종이가 나오는데 나는 그 종이를 읽는 걸 좋아했다. 


오늘의 운세같이 별 기대 없이 보고, 재미난 문장이 나오면 곱씹고, 공감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의미를 부여해 보고, 터무니없는 내용이 나와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종이로 치부할 수 있어서. 


대표 신혼여행지인 하와이에 혼자 왔다. 물론 혼자서도 신나게 잘 즐길 수 있는 나였지만 다분히 의도가 보이는 세계 각국의 남정네들의 관심 세례에 지쳐 호스텔에 있었음에도 혼자 있고 싶었다. 상대적으로 아늑한 호스텔에서 재밌는 얘기를 나누고 놀아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생겼다. 뭘 해야 할지, 그냥 조급하고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짐 정리를 했다. 그러다가 노트북 가방 앞 주머니에서 발견한 쪽지. 아? 이건 무려 일 년 동안 주머니에 있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서울에서부터 차를 끌고 제주도에 가겠다며 목포에 들른 적이 있다. 여행을 할 때 어딘가를 경유할 때 꼭 짧더라도 경유지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편이다. 그곳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지역 특산물이 있다면 맛집 찾아가기, 동네 서점이 있으면 종이 냄새 맡으러 서점 들르기 같은 방식으로. 한창 동네 서점을 찾아다니던 때라 일부러 찾아갔다. 지구별서점. 아기자기 조그만 공간에 여행, 환경 서적 위주로 큐레이션 되어있는 서점이었는데 가운데 큰 테이블 가장자리에 재미난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투명한 어항 안에는 이미 내용이 보이지 않게 곱게 접힌 종이가 가득 담겨있었다. 


'인생글귀를 적어주세요. 그리고 한 장은 가져가세요.'

어떤 걸 적지? 고민하다가 어디에선가 보고 기억하고 있었던,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었다. 누군가에게도 적절한 때에 필요한 말이기를 바라며. 그리고 고심해서 하나를 뽑았다. 그러나 바로 읽지 않았다. 그날 노트북 가방 앞 주머니에 잘 넣어두고 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이후로 노트북 가방 앞 주머니를 뒤질 때마다 종이가 손에 집혔으나 펼쳐보지 않았다. 그냥, 별로 펼쳐보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작은 부적 같은 느낌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꼭 필요한 순간에 읽고 싶었다. 


그 쪽지는 나와 함께 서울에 올라왔다가 호주로, 미국에 들렀다 하와이에 왔다. 의도치 않게 전 세계를 여행하던 쪽지를 펼쳐봤다. 무슨 말이 나올까, 많은 기대 없이 가볍게 웃고 넘기자는 마음으로. 


"그대도 지금의 나처럼 책을 쓰고 있다."

한참 동안 이 문장을 바라봤다. 이 글을 적은 이는 그때 어떤 삶을 살고 있었으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문장이 지금 나에게 와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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