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as Jul 16. 2023

내 소망이 부끄러웠다.

퇴사사유 :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처음 직업에 대한 생각을 했던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직업이 아니라 대학에 대한 생각이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직업이라고는 의사, 교사, 간호사, 건축가 정도였다. 성적을 최대한 잘 받아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게 그때 그 시절 모두의 목표였다. 그 목표는 야심 차게 서울대부터 시작했지만 원서를 넣을 때쯤엔 연고대, 성균관대, 한양대... 쭉쭉 내려가다가 서울에만 학교가 있으면 되지 않겠나, 했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에서도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건지를 생각하는 대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대기업에 입사하기를 꿈꿨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존심은 상하지만 자신의 전공으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회사 리스트를 추리고 그 안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웠다. 정말 모두가 그랬다.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나는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다니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두세 탕 알바를 뛰었다. 누구는 대기업 임원진의 아들로 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녔고, 누구는 부모님이 공무원이라 당연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기도 했다. 나는 가족 구성원의 영향도, 어렸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도 크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들을 찾아다녔다. 스무 살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는데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출판사, 수학 학원, 보드게임 카페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했다. 알바 이외에도 돈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활동은 다 시도해 봤다. 당시 내가 잘할 수 있는 '내가 알고 있는 걸 쉽게 설명하는 능력'으로 교육 봉사를 했다. 또 해외에 나가보고 싶어서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여권을 발급했고 필리핀이라는 나라로 가게 됐다. 그렇게 내 손으로 이뤄내는 작은 성취를 경험하면서 막연히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자연스레 내게도 길이 보이지 않을까, 낙관했다.


필리핀 해외봉사를 통해 '나 꽤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자기 효능감을 크게 느껴 봉사활동에 푹 빠져서 3년 동안 교육봉사에 몰입하기도 했고, 여행이라는 행위에 꽂혀 혼자 3개월간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나에 대해 알아갈 꽤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반의 나는 돌연 취업하기를 선택했다. 취직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지, 효도해야지라는 말은 그냥 흘려들었지만 '그래,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회사에 입사해서 돈을 벌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사실은 뭘 하고 싶은 건지,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지를 몰라서 떠밀리듯 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만든 시간의 굴레에서 조급했다. 정답은 존재했고, 그 정답에 가까워지기를 선택한 거다. 


메이저 공기업 전공 필기시험 대비를 위해 온라인 카페에서 스터디를 구했고, 8개월간의 전공 스터디 그리고 일주일의 면접 스터디를 거쳐 결국 나는 목표한 곳에 입사했다. 그렇게 입사하고 3년 차부터 의구심을 갖게 됐다. 첫 2년은 매일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해내면서 성취감을 느끼곤 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업무를 한다는 것이 꽤 곤혹스럽게 여겨졌다. 주변 상사들이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저게 내가 원하는 내 미래의 모습일까? 크고 작은 부조리함에 좌절하고 연연하는 게 힘들었고,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점점 영혼이 새까매졌다. 몇 년만 더 버티면 평생 이 회사를 다닐 것만 같았다.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뭐 재미있는 것만 하고 어떻게 사니?"

"퇴근 후 시간에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지 않아?"

"너 뭐 돼? 잘하는 거 있어?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 그런 거 없잖아."

"너보다 더 힘든 사람 많아."

심지어는 본인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 말들에 쉽게 휘둘렸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평균적인 외모에 평균의 성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정환경에서 형성된 수동적인 성격 탓이었다. 내가 나서서 뭔가를 쟁취해 낼 수 있다는 사실, 그 방법을 몰랐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나는 뭘까, 왜 태어났을까. 무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까? 그냥 우주 속 작은 먼지일 뿐인가? 처음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게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거라는 치기 어린 마음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야근을 하고 있는데 부장님이 밥 먹으러 가자고 말을 걸어왔다.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아? 네... 그게, 저... 퇴사하려고요."

사실 아직 말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내뱉어 버렸다. 왜인지 모르게 감히 품어선 안 되는 걸 품은 것 같은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