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후 처음해본 것들1

실업급여

by 늘날생각해

백수가 되고 나서야 사전에서 '백수'를 검색해 보았다.


‘백수건달’의 줄임말인 백수는 ‘무직자’와 같은 의미다.

원래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을 의미했으나 현재는 직업이 없는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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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없는 사람=백수=현재의 나


그렇다면 나는 백수다. 맞는 말씀이다.

무직자가 맞다. 그러나

'백수'란 단어는 '백수'보다 '건달'에 무게추가 심하게 쏠린 것 같아 나 스스로를 '백수'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냥 무직자다.

직업이 없고 해야 할 업무도 없지만

할 일은 많은 무직자가 된 것이다.




백수, 아니 실직을 하고 무직의 상태가 된 나는

처음으로 실업급여를 타보았다.

사실 프리랜서로 평생을 살았기에 실업급여는

다음 생에서나 가능하겠구나, 나와는 무관한 남의 얘기구나,

여기며 살았는데 나도! 실업급여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새롭게 적용된 예술인 고용법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원천세 3.3% 빼고는 아무것도 떼어가지 않던 월급이 미미하게나마 줄어든 것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 그 미미한 것의 존재가 고용보험료였던 것이다.


그동안 강제로 거둬가는 건 다 쓸데없다고 여겼는데

그 미미하고 거슬렸던 존재가

지금의 나를 먹여 살리게 되었다.

고마웠다.


풍문으로 듣자 하니 실업급여는 날짜를 정확하게 지켜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못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무서웠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생명줄을 거머쥐고 있는 것이 실업급여였기 때문이다.


빨리 재취업을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나의 백수, 아니 무직자 생활이 길어질 수 있으므로

실업급여는 곧,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나의 생활비였다.

그래서 나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실업급여에 대해 공부했다.




실업급여를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블로그를 뒤졌다.

수십 개를 훑어보았지만 단어는 낯설었고

서로 다른 말도 많았다.

그래놓고 마지막엔 다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쉽죠?- 라는 말을 남겼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겠지만

실업급여를 이해하기가 생각보다 어렵고 쉽지 않았던 나는

머리에 쥐가 났다.


그러다 나의 눈높이에 맞게 정리된 블로그를 발견했다.

말보다는 캡처로 본인의 경험을 공유한 포스팅이었는데

진짜 쉬웠다.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어렵지 않죠?

간단해요.

라는 희망의 얘기도 남아있지 않아 더 좋았다.

고마웠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 미션은

집에서 가까운 고용센터를 방문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딱 두 번만 방문하면 된다.

요즘 실업급여 신청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있어 편리하지만

혹시 머리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거나

그 어떤 일타강사가 와도 이해를 못하겠다, 싶으면

고용센터를 방문하면 된다.

비대면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대면으로 해결된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나의 실업급여를 담당할 고용센터가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센터로 들어갔다.

인터넷으로 미리 공부해 온 대로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으면 된다.

나보다 먼저 온 선배님(?)들의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금세 나의 번호가 불려졌다.


신분증과 미리 작성한 서류를 담당자에게 건네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담당자의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또한

평소에 낯선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내가

네? 네에? 뭐라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를 연발하며 담당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불상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회사에 연락해서 빨리 처리해 달라고 하세요.


해촉증명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잠깐 핀트가 어긋날 뻔한 것 외에는

아무 문제 없이 실업급여 신청이 진행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회사에서 아직 나의 실업을 고용노동부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의 X회사에서 정보를 업로드하지 않아 아직 나의 실업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실업급여 신청 접수는 해줄 테니 회사에 연락해서

나의 실직을 공식적으로 보고하게 만들라는 담당자의 말에

아, 네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이제 가도 되나요?

라고 최대한 잽싸고 공손하고

말 잘 듣는 어른처럼 얘기한 뒤 고용센터를 빠져나왔다.


휴우. 해냈다.

공공기관에 가는 건 제법 떨리는 일이다.

두 번째 오는 날엔 떨림이 덜하겠지만

역시 처음은 처음이었다.

세상의 모든 처음은 나를 떨리게 한다.

설레게만 하면 좋을 텐데 설렘은 없이 떨림만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X회사에 연락하는 것.

가본 적 없는 공기관을 방문하는 것만큼 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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