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직 이야기10

실직 후 두 달, 여전한 것과 달라진 것들

by 늘날생각해

잘 지내십니까.


동료의 단출한 안부 톡에서 올 것이 왔다는 설렘이 느껴졌다. 단순히 잘 지내냐는 인사였지만 그래. 이제 한번 얼굴 볼 때가 되었지. 싶어 살짝 설렜고 신났다. 그리고 1% 될까 말까 한 마음 한 조각. 그건 혹시? 하는 희망이었다.



회사 앞으로 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회사가 가까워질수록 회사 '앞으로' 가겠다는 말은 하지 말 걸,싶었다. 어느 식당에서 보자고 할 걸, 이왕이면 멀리 떨어진 식당에서 만나자고 할 걸, 후회 3종 세트를 제작한 건 지나는 길거리에 아는 얼굴이 몇몇 보이면서부터였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흡. 하고 호흡을 들이마시며 사잇길 담장 아래로 몸을 숨겼다.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짝사랑하는 남자를 몰래 훔쳐보러 왔다가 그가 100미터 전방에 나타나자 머리카락 보일라, 그림자라도 들킬라, 얼굴 빨개지며 완벽히 은폐엄폐하는 소녀처럼... 몸을 숨겼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갑기는 하였으나 잘 지냈냐, 뭐하고 지내냐, 라는 말에 잘 지낸다, 그 뭐 하고 지낸다, 라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나누는 게 싫어 제발 못 보고 지나가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소심한 백수의 모습이었다.


마냥 신나는 마음으로 회사 근처에 점심 먹으러 왔지만 막상 도착한 그곳은 수년을 출퇴근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금은 낯설었고 조금은 서먹했다.



동료는 1층 로비로 내려오며 톡으로 좋은 정보를 하나 보냈다. 모 부장이 그쪽 방향으로 간다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말이다. 나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발걸음에 소리를 배제하고 사뿐사뿐 날쌔게 움직였다. 은폐엄폐하는 군인처럼. 모 부장은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게 두 달 만에 만난 동료의 첫인사였다. 잘 지냈냐, 는 나의 근황을 묻는 것보다 더 유용하고 효율적이며 마음에 드는 첫인사였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나의 근황은 자유인이자 자연인처럼 지낸다로 끝났기에

동료는 회사의 근황을 전했다. 굵직굵직한 것들만 뽑아서 얘기를 했다는데 두 달 전에도 알고 있던 사실이라 여전하구나,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실 여전하지는 않았다. 여전하다 못해 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의 빈자리 때문만은 아니고 회사 상황이 어수선하다 보니 벌어진 난장판이라 나는 조금 웃겼고 조금 혀를 끌끌 찼고 조금 씁쓸했다.



회사를 나올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얘기가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것.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하지만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빨리 해결될 것 같았던 기약은 꼬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고 진전 또한 없었으며 희망도 의문도 관심도 사라진 상태였다. 동료는 만나러 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가졌던 희망은 사실 1%가 아니라 0.000001%였다. 누군가, 진짜로 기대 안 했어? 혹시 싶었잖아?라고 묻는다면 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했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희망이었다.


그저 동료가 보고 싶었고 같이 점심 먹으며 수다를 무아지경으로 떨고 싶은 마음에 회사를 찾아간 것이었기에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여전한 회사 풍경 안에 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했다. 안에 있는 이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게 어때?

쉬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구.

몸이 아파? 그럼 좀 쉬어야지.

마음이 아파? 그래 좀 쉬자.

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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