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폐업 이야기4

감정의 평행선

by 늘날생각해

어느덧 시간이 또 이만큼이나 흘렀다.

그간 나는, 폐업과 퇴사의 자유를 만끽했고 ..만끽했고... 만끽했으며... 만끽하였다. 자유의 황홀함에 달콤하게 빠져 잠수를 타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흐른 것이다. 흐릿해져 가는 기억에 의지해 이야기에 속력을 실어야겠다.


시아버지와의 카페 이름 변경 건으로 일방적인 마찰을 겪은 차차는 다시 본래의 모습대로 씩씩함을 장착한 채 인수인계를 이어갔다. 눈썰미와 감각이 타고난 사람이었는지 음료를 곧잘 만들었다. 레시피는 외우는 수밖에 없는 단순한 미션이지만 감각을 키우는 건 시간을 들여도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미션이었기에

나와 남편은 차차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다 됐다고, 90%는 했다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힘을 실어줬다.


이제는 차차가 홀로서야 할 시간.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준 남편은 건물주이자 매일 카페에 들러 카페라떼를 사가는 같은 건물 4층에 거주하는 주인아주머니를 상대로 주문을 받아 음료를 완성해 보자고 제안했다. 차차, 혼자서.


차차는 서글서글했다. 싹싹했고 표정도 밝았다. 그 모든 걸 해내기 위해 시간을 몹시 들였던 나와는 달랐다. 첫 손님인 주인아주머니에게 주문을 받으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차차는 차차 안정을 되찾고

차분하게 음료를 만들었다. 우유 스팀은 소리만 들어도 몽실몽실 구름 같은 라떼가 될지 우악스러운 개거품의 라떼가 될지 알 수 있다. 차차의 스팀 소리는 퐁글퐁글했다. 괜찮은 스팀 소리였다.


"처음 만든 건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잘 좀 부탁드려요."

차차는 친근함을 담은 눈웃음으로 주인아주머니에게 라떼를 전했고 말투가 무뚝뚝하지만 정 많은 주인아주머니는 "얼마나 맛있나 맛 좀 봐야겠네."라는 아리송한 말과 확실히 애정을 담은 눈웃음을 동시에 띄우며 카페를 떠나셨다. 오호호. 아하하. 화기애애한 웃음의 꼬리가 짧았다. 차차는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나와 남편 또한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저러다 차차가 중도포기를 선언하면 어쩌지, 싶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서일까.



카페 인수인계가 마무리되어 갈수록 나와 남편은 잡념 대신 웃음이 많아졌고 차차는 잡념이 많아지고 있었다. 하루는, 시아버지 카페 변경 강요 사건 때처럼 풀이 죽어 있어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까지도 불쑥불쑥 떠오르곤 한다.


"부침이 있어서 그래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을 것 같던 캔디 차차는 고독과 서글픔을 눌러 담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부침이 있다고.


그래. 누구나 부침이 있지. 라는 생각 대신 참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부침, 이란 단어는 뒤에 -개를 붙여 부침개로밖에 쓰지 않았던 나에게 신선한 단어로 다가왔다.



차차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침'으로 서글퍼하는 사이 나는 '부침'이란 단어의 재발견으로 개운해하고 있었다. 차차는 카페를 이어받아 어떻게 운영할지 걱정이 태산인 가운데 나는 카페를 넘기고 어떻게 일상을 보낼지 행복한 상상이 태산이었다.


시소를 평행하게 만드는 건 힘든 일이다. 몸무게가 똑같은 사람이 양쪽에 타고 있어도 완벽한 균형을 이루기란 어렵다. 누구 하나가 땅으로 내려가면 다른 하나는 하늘로 치솟는다. 공평하게 번갈아 땅과 하늘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때론, 무게 때문인지 장난 때문인지 앉은자리의 위치 때문인지 계속 땅에만 있는 사람도 있고 계속 하늘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엇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차차와 나는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대신해 줄 순 없었다.


폐업을 하며, 생각지도 못한 조금 잔인한 감정선을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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