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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전 Aug 12. 2020

고통은 왜 올까?

의미 있는 고통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 '빅터 프랭클'이 한 말이다.


고통은 몸과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을 말한다.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고통의 강도는 사람마다 이를 흡수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겪는 고통,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원치 않는 이 친구를 대해야 할까?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친구라고 표현해 보는 게 어떨까?)  


난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알게 되었고, 이 고통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완전히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이 고통의 의미를 알기에 더 이상 괴롭거나 아프지 않다. 이혼을 하기까지는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1. 이혼을 결심하는 단계

2. 이혼하는 과정

3. 법적 이혼이 마무리된 후 


지금 나는 어느새 세 번째 단계까지 와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첫 번째 단계보다 이혼하는 과정의 두 번째 단계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다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수많은 날들을 괴로움에 힘들어한다고 하는데 나는 오랜 기간 마음에 쌓였던 것들이 있어서 그런지 결심을 하는 데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래서 고통 없이 이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단계를 잘 넘기고 2단계 이혼 과정에 들어서면서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최고의 고통을 맛보았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나를 이 단계에서 힘들게 하였다. 그때 내가 나에게 질문했다.  

"이 고통은 왜 올까?"

빅터 프랭클이 말한 의미 없는 고통이 나를 망가뜨리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난 이 고통과 공존하는 동안 나를 헤치지 않고 이 친구와 멋진 이별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혼 과정에서 아이들을 개입시켜서 소위 막장 싸움으로 변질시켜버리는 상대측을 대응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다. 우리 아이들을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 가사조사관이나 경찰들은 아무런 죄책 감 없이 이 아이들과 나의 관계를 단정 지어 버렸다. 아이들과 보낸 10년의 세월을 당신들이 뭘 안다고... 억울한 감정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이었다. 이혼 과정에서 벌어지는 입에 담기 힘든 수많은 사건들은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다. 육체적으로 가장 큰 고통은 불면증이었다. 잠들기가 쉽지 않았고 잠들어도 금방 깨어난다. 잠깐이라도 제대로 자면 좋은데 악몽까지 꾸니까 더 힘들고 살도 빠지는 거 같고 늘 피로감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다 보면 온몸이 불편해졌다. 정신적으로는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사실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라왔다. 그냥 이 고통 속에 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겁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 고통이 주는 의미를 점차 깨달아 갔다.

내가 소홀했던 신앙의 믿음을 다시 찾게 되었고, 오로지 '나'의 모습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고통의 시간이 값진 시간들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 고통 친구는 나를 괴롭히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를 깨우치려고 온 것이었다. 내가 너무 무지했던 것들을 나 스스로 알아갈 수 있게 나를 훈련시켜주고 있었다. 옛 말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고 했는데 고생 친구랑 헤어지고 나면 오게 될 새 친구가 기대되기 시작하면서 내 앞에 주어진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난 1년 반이나 걸렸던 2단계를 잘 넘기고 이제 3단계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혼은 행복해지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덜 불행해 지려고 선택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은 고통이 조금 약해지는 것이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 이혼하고 나면 오는 또 다른 고통들이 존재한다. 이혼 후 처음으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보았다. 이제 나를 중심으로 나의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이 적혀 있었다. 서류 속 '배우자'가 사라지니 내 맘속 돌덩어리 하나가 빠진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이 서류를 은행에 제출할 일이 있었는데, 담당자가 보더니 나에게 건 낸 한 마디, "힘드셨겠어요?". 처음 본 사람이 앞뒤  맥락 없는 그냥 건넨 이 말 한마디가 내가 그동안 숨겨온 고통의 무게가 들켜버린 것만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입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들어 올려 촉촉해진 눈을 가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이제 나 홀로 세상에서 부딪치게 될 난간들이 또 다른 고통이겠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다.


나는 이혼을 하면서 나에게 온 고통 친구 때문에 괴롭기도 했지만 이 친구와 잘 헤어지려고 준비 중이다. 이 친구가 나에게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지만 이제 나는 이 친구가 두렵거나 무섭지 않다. 얼마 전 친정오빠가 나의 생일날 준비한 케이크가 어찌나 달콤하고 맛있었던지... 이제 내가 세상의 달콤함도 느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고통이 와도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항상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난 또 한 번 성장했다. 


난 의미 있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지금 고통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많은 이들도 의미 없는 고통으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지 말고, 오히려 고통이 나의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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