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
"빼빼 할매~"
난 어릴 적 우리 할머니를 늘 '빼빼 할매'라고 불렀다. '할매'가 버릇없어 보일지 모르나 경상도에서는 할머니를 할매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빼빼로가 가늘고 긴 모양인데 우리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하고 다르게 빼빼로처럼 깡 마르셨다. 어린 눈에 할머니가 빼빼로처럼 보여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난 그렇게 불렀다. 심지어 지금도 할머니 성이 '박'씨라는 것 밖에 모른다. 나에겐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냥 빼빼 할매이다.
빼빼 할매는 큰집에 딸만 셋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 집이 작은 집인데도 오빠가 집안 장남이라고 늘 우리 집에서 계셨다. 할머니는 오빠가 집안 대들보라고 생각하셔서 오빠를 중하게 여겼지만 내 느낌에는 나를 가장 사랑하셨던 거 같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는 꼭 내 옆에서 나를 챙기며 잠드셨는데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손주라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난 잠들기 전 고약한 버릇이 있다. 바닥에 큰 이부자리를 펼쳐놓고 자는데 나는 빼빼 할매의 팔꿈치를 쪼물락 쪼물락 만지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 보통 사람들도 팔꿈치는 가장 살이 없고 연약한 부분이다. 우리 빼빼 할매는 가뜩이나 마르셔서 팔꿈치에는 살점이 하나도 없다. 그냥 피부 껍질만 쪼글쪼글 붙어있었다. 난 그 느낌이 좋았다. 지금까지도 할머니 팔꿈치처럼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얼마나 뜯어댔는지 할머니 팔꿈치는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를 반복하더니 결국 피부가 늘어져서 팔꿈치가 약간 처지면서 호두 껍질 같은 모양을 가지셨다.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을 계속 가지고 다니다 보면 인형도 변형이 오듯이 우리 빼빼 할매 팔꿈치는 내가 쪼물락 거리기 가장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졌었다.
"빼빼 할매~~ 나 잘란다~빨리 온나~" 라고 내가 졸린 메시지를 할머니에게 보내면
할머니는 조용한 경상도 사투리로
"에고, 기다려 봐라이, 곰방 간다" 하시며 내가 자기 전에 잠투정할까 봐 서두르신다.
"빼빼 할매! 준비됐나?"라고 내가 물으면
"퍼뜩 갔다 올게"하신다. 어디 가시냐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는 장면이긴 한데, 할머니는 부엌 냉장고로 가셔서 양 팔꿈치를 냉동고에 잠깐 넣고 팔꿈치가 차가워지면 재빨리 내 옆으로 오셔서 누우신다. 난 샤벳처럼 사각사각 시원해진 할머니 팔꿈치를 손으로 뜯기 시작한다. 뜯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깊이 잠이 든다. 자다가도 중간중간 무의식적으로 할머니의 팔꿈치를 뜯는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 옆에 꼭 붙어 계셔야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을 받는 순간이 바로 그때였던 거 같다. 내가 엄마가 돼서 아이를 키워보니 애들 먹이고, 재우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는데 우리 빼빼 할매는 한 번도 싫은 내색한 적 없으셨다. 심지어 짜증 내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자식 키워보니 '당연하다'라고 생각한 것도 '당연한 게'아님을 배워간다.
"빼빼 할매~"
내가 하교하고 집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 제일 처음 소리 지르는 말이다. 난 하교 길에 항상 집에 할머니가 안 계시면 어쩌나 걱정한다. 할머니는 가끔 대구에 있는 큰 집에 다녀오시는데 한번 가시면 한 달 정도 지나야 다시 돌아오셨다. 나에게 할머니가 없는 한 달은 최악의 한 달이라서 할머니가 큰 집에 가실까 봐 늘 맘이 불안했다. 그래서 매일 밤 잘 때,
"빼빼 할매, 대구 안 갈거제?"물어본다.
할머니도 내가 싫어하는 걸 알아서 가실 때는 내가 전혀 눈치 못 채게 지내시다가 갑자기 떠나신다. 나도 눈치가 생겨서 할머니가 이쯤 갈 거 같다...라고 감이 오면 할머니가 대구 갈 때 꼭 들고 가시는 보자기를 숨겨놓은 적도 있다.
할머니는 동네 전통 시장을 매일매일 가셔서 장을 봐 오셨다. 그날 먹을 반찬거리를 당일 제일 신선한 것으로 사셔서 만드셨다. 난 할머니랑 시장에 가는 게 재미있었다. 시장통 순대도 먹고, 생선도 구경하고 신이 났다. 할머니는 생선을 구우시면 꼭 눈알을 빼다가 나를 먹이셨다. 눈 밝아진다고... 할머니 때문에 수 백개의 생선 눈알을 먹은 거 같은데 난 우리 집에서 시력이 가장 안 좋다. 생선 눈알이 눈에 좋다는 거는 과학적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할머니가 빼준 생선 눈알을 먹어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유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린 나에게 빼빼 할매는 세상에서 전부였다.
그런데 우리 집안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 집에서 지낼 수 없게 되셨다. 이후 할머니는 고모 댁에서 지내셨는데, 할머니와 헤어진다는 게 어려워진 집안 형편보다 더 힘들었다. 그래도 고모 댁이 멀지 않아서 중학생이 되니 혼자서 할머니를 찾아뵐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할머니를 뵈러 갈 때 난 꼭 베지밀을 챙겨갔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셨고, 베지밀을 먹으면 왠지 할머니가 오래 사실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내가 오기를 늘 기다리셨던 거 같다. 내가 오면 우리 집 소식도 들을 수 있고 나랑도 이런저런 수다도 떠니까 할머니 표정이 행복해 보이셨다. 할머니는 고모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바지 주머니에 숨겨놓은 꼬깃 접은 돈을 나에게 휙 떤지신다. 그리고는 "빨리 집어넣라"라고 얘기하시면서 고모가 혹시 볼까 봐 주위를 살피신다. 그때 할머니가 늘 하던 말씀이 생각난다. "느그도 빨리 집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집이 있어야 한다" 난 왜 그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셨는지 이제야 알 거 같다. 우리가 다시 집이 있어야 할머니가 우리랑 같이 살 수 있으니까 할머니는 우리랑 같이 있고 싶으셨던 거다.
사업 때문에 중국으로 간 아빠를 따라 난 중국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가끔 찾아뵙던 할머니도 뵐 수가 없었고, 중국에서 적응하랴 공부 따라가랴 정신이 없어서 그때는 할머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는 내가 못 뵌 잠깐 사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셔서 거동이 불편하시게 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건강이 좋지 않던 고모도 더 이상 할머니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방법은 아빠와 내가 있는 중국으로 할머니를 모시는 수밖에 없었다. 난 너무 좋았다. 다시 할머니와 살 수 있게 되어서 말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난 할머니의 모습은 다리가 접혀서 펴지시질 않으셔서 걷지를 못 하셨다. 난 할머니랑 이곳저곳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이 생각해 놓았고 중국 전통시장도 할머니에게 구경시켜줄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다들 할머니가 이 상태가 될 때까지 방치한 것은 아닌지... 원망되고 화도 났다.
할머니가 나를 키우셨고 이제 내가 할머니를 보살펴 드릴 차례가 온 것이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할머니는 내가 하교할 때까지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리셨다. 그때 난 어릴 적 내가 하교하고 집에 오면 할머니가 안 계실까 걱정하던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할머니가 오시면서 난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 할머니는 내가 씻겨줘야만 꼭 샤워를 하셨고 샤워 후 귀도 파 드려야 하고, 손톱도 깎아드리고, 대소변도 치워드려야 한다. 할머니가 계시는 방은 찌든 내로 숨을 쉬기 힘들다고 청소해주던 조선족 아줌마가 왁스로 방을 닦으셨다. 그런데 난 그 방에서 옛날에 내가 맡던 그냥 우리 빼빼 할매 냄새만 났다. 내가 고3이 되어서 대입 준비로 한창일 때 할머니는 치매가 오셨다. 나를 알아보시다가도 갑자기 "누구고?"라며 이방인처럼 대하셨다. 그때가 할머니랑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빼빼 할매가 나를 못 알아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난 대학에 합격하고 베이징으로 떠났다. 할머니를 모시고 기숙사에서 살 수도 없으니 난 할머니에게 떠나기 전까지 매일매일 세뇌시키듯이 할머니가 주의해야 할 것들을 일러두었다. 그런데 내가 베이징으로 가고 1학년이 채 지나기 전 할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할머니가 그렇게 소원이셨던 집도 아직 못 샀는데 중국에서 돌아가시게 된 게 지금도 가장 가슴이 아프다.
빼빼 할매는 내 맘 속에 늘 계신다. 내가 힘들 때 빼빼 할매가 혹시 하늘에서 이 모습을 보시고 걱정하실까 봐 다시 용기 내어본다. 잠이 안 올 때는 빼빼 할매 팔꿈치가 많이 생각난다. 냉동고에 팔꿈치를 얼려서 오시는 빼빼 할매는 헌신적으로 나를 돌봐주셨다. 문득 빼빼 할매 팔꿈치에 바셀린이라도 발라드릴 걸 한 번도 그러질 못 했다는 생각이 드니 할머니가 더 보고 싶어 진다. 빼빼 할매의 나프탈렌 냄새와 샤베트 촉감의 팔꿈치, 빼빼로같은 할머니의 모습, 빼빼 할매가 빼 주시던 생선 눈알 맛, 이 모든 것이 내가 힘들 때 내가 무너지지 않고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근간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한 사람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랑의 힘으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 어려움이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만든다. 나에겐 '빼빼 할매'는 그런 존재이다.
'빼빼 할매, 걱정하지 마이소. 나 잘 지내니까, 빼빼 할매가 소원이였던 집도 내 지금 있다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