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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하 Mar 09. 2023

철사장

쌓아 올린 모래성은 어느새 흙탕물

우리 세운 모래성은 작고 작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뜨겁게 달궈진 채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다


유리조각이 하나 반짝이는데


금세 파도가 덮치고 만다

그새 파도에 휩쓸리고 만다


우리 세운 모래성은

목 졸린 채 실종됐다

고운 모래입자가 아니라

길바닥 먼지들이었던 그거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건 걸레

씻어도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향은

당신의 것이었나


온몸의 흉측한 상처를

빨개질 때까지 문질렀다

비누거품은 무엇도 지워주지 않는다

무력해

지울 수 없어


도리어 피와 같아서,

도리어 피와 같아서,


온몸을 덮어버린 그

나는 당신에 질식하고 만다


눈을 뜨면 다시 어른인 나     

우산 없이 폭 젖어 걷다가

흙탕물을 바라본다


녹아내려 흙탕물이 되어버린 모래성


알 수 없는 메스꺼움에

흙탕물 속으로 다이빙


눈을 뜨면 다시 어른인 나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모순

깨끗해지고 싶었는데

오물을 나로 닦고 있던


아,


눈을 뜨면 다시 어른인 나

눈을 뜨면 다시 어른인 나


몇 번을 감았다 떠도

연꽃은 없고


눈을 뜨면


다시

어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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