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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박 Nov 03. 2022

살면서 한 번은 만나는 미세스 미저리 이웃 2

매일이 할로윈데이?

그 은발의 할머니는 늘 웃고 있었다. 나름 이웃을 위한 봉사로 공용 재활용 쓰레기통을 닦는다던지, 빌라 앞 잔디를 깎는다 던지, 고소한 버터 냄새나는 와플을 구워와서는 달콤한 미소로 건네줄 때는 친절한 이웃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이웃으로써 적정선을 지키면 그녀의 웃음에 하이 파이브라도 날리겠지만 말이다, 그녀의 미저리 짓은 그딴 친절 가면에 펀치가 안 날아가도록 한쪽 주먹을 다른 손이 잡고 있어야 할 판이었다.


그녀가 분노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예를 들면, 두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빌라 계단 청소를 토요일 깜빡 잊고 있는 날이 있었다. 그럼 일요일 아침에 어김없이 우리집 초인종을 누른다. 문을 열면 은발의 그녀가 서 있는 것이다! 마치 정의를 집행하는 죽음의 사도처럼 으스스한 삐에로의 미소는 식었고, 백발은 헝클어지고, 턱관절은 벌벌벌 떨리고, 옅은 금발 속눈썹이 듬성한 눈은 눈물이 약간 고였으며,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분노로 가득차 그녀는 말하는 것이다.

왜 어제 계단 청소를 안 했어?!

나는 미안하다고, 깜빡했다고 지금 하려던 참이라고 말한다. 말하면서도 아니 내가 노예도 아니고, 그 할매가 내 보스도 아닌데 왜 죄책감이 드는지 알 수없었다. 계단 청소를 토요일날 하라고 법전에 써있는 것도 아닌데 그 할매가 정해놓은 그날에서 하루 늦은 게 무슨 대수라고! 청소를 하면서도 느낄 수는 있었다, 특히 일층인 그녀의 집 앞 계단 청소를 할 때 나를 몰래  지켜보는 그녀의 시선을.  닫힌 현관문 안에서 볼록렌즈로 밖을 몰래 보며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있 그녀.


이 할머니가 좀 이상하다는 걸 구체적으로 느낀 것은 우리 아들 케빈이 기니피그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토끼 같은 생긴 쥐새끼인 요놈들은 돼지처럼 먹고 자고 싸는 게 주특기고, 남미에서는 식용을 쓰인다는데 과연 토실토실한 것과 비례해 배설물 양도 꽤 많았다. 청소하기 쉽게 얘네들 집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싹 걷어서 버리곤 했는데 어느 날은 할머니가 내가 갖다 버린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그러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 벨을 딩동 딩동 누르는 은발의 미저리 할매... 으스스한 삐에로 미소를 얼굴에 얹고는...

이쯤 되면 내가 만만하다는 건가, 아시아에서 온 여자라서 니가 버린 쓰레기에 뭐가 들었는지 좀 봐야겠다, 허락받고 버리라 뭐 이건가. 나도 참을만큼 참았다! 한국식 경로사상은 집어던지고 그때부턴 할 말은 해야 된다고 본능의 나침반은 말해주고 있었다. 친절도 버릇이 되면 권리라고 오해한다더니 갱상도 여자 파워를 바이킹 할머니한테 좀 보여줘야 한다는 걸 마음속의 다이너마이트가 가르쳐주는 순간이었다.


할매: 하이. 너 쓰레기 분리수거 안 했더라!

나: 하이. 너 내가 버린 쓰레기 뒤졌니?

할매: 네가 분리수거를 안 한 거 같아서 내가 쥐똥과 신문지를 따로 분리해서 버렸어.

나: 응,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해. 그렇치만 너처럼 하라고 나에게 강요는 말아줘. 배설물이 붙은 신문지를 그냥 쓰레기 통에 버리지 그걸 어떻게 똥따로 신문지 따로 분리를 하니? 내가 만약 네가 버린 쓰레기를 일일이 뒤지면 좋겠어?


그때부터 할머니가 갑자기 우는 거다.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몇 달 전에 자기 오빠가 죽었고, 며칠 전엔 자기 친구가 죽었고, 자긴 너무 우울하고 외롭다는 거다. 순간 당황한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기 까지 하곤 내가 도울께 있음 언제든 말하라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고선... 이건 뭐지?.. 했다...

내가 강하게 나가니 눈물작전으로 상황을 얼버무린 건지, 꼬리를 내린 건지 순간 헷갈렸으나 다음에도 강하게 나가야 된다는 걸 확인시킨 사건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끝없이 계속...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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