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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Oct 27. 2022

영달씨의 자리

"부우웅~ 부우우우웅~"


새벽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우렁차다. "왈왈~" 밤새 마당을 지키다 느지막이 잠이 든 옆집 누렁이. 그 곤한 시간까지 깨워버렸다. 드르륵. 영달씨도 방문을 연다. 그리고는 무심하게 툭. 문지방 위에 손을 얹는다. 억겁의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장수 거북이처럼 느릿한 동작으로 빼꼼.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마당 너머로 펼쳐지는 익숙한 풍경. 영달씨는 어제도 그제도 같은 장면을 보았다. 옆으로 완만하게 포물선을 그리는 빨랫줄 너머에는 포구와 어판장, 횟집과 편의점이 즐비하다. 그 뒤를 감싸는 품 넓은 바다까지. 영달씨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이 광경을 독점하는 최다 관람객이 될 것이다.






작은 포구를 끼고 있는 한적한 어촌마을. 영달씨의 집은 강원도 삼척에 있다. 앞에는 망망대해가 진을 치고 뒤에는 산봉우리가 병풍을 드리운다. 그 사이에 깍두기처럼 언덕배기 동네가 끼어있는데. 비탈진 계단식 마을. 그중에서도 노른자 부위에 둥지를 튼 기와집이 그의 거처다. 너무 높지도 그렇게 낮지도 않은 그곳에서 일평생을 지새웠다.


영달씨가 일과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세 평 남짓한 마당이다. 마당 한 켠에는 그의 지정석이 있다. 본래 식탁과 함께 썼을 법한 낡은 옥색 의자 하나가 집건물 외벽에 등을 대고 멀뚱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끄떡없다. 처마가 길쭉하게 떨어지는 곳. 그 아래에 놓여 있으니 눈에 젖어도 많이 젖지 않고, 비바람을 맞아도 많이 맞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망가질 곳은 망가지는 법이니. 손이 많이 닿는 등받이의 가장자리는 칠이 다 벗겨져서 듬성듬성 녹이 슬었다.


 

"뭘 그렇게 이고 가 와"

"가재미! 오늘 들어온 가재미가 실하잖소"



영달씨는 동네 반장이나 다름없다. 그의 마당은 언덕마을 주민들의 통행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가호호. 집집마다 부러 찾아다니지 않아도 온 동네 사람들을 앉은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니. 이만한 명당이 또 어디 있으랴. 눈 뜨고 일어나 마당 의자에 엉덩이를 대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천리를 내다볼 수 있다. 그렇게 하루를. 그렇게 일년을. 그렇게 수십년을 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건장한 사내로 태어나 기골도 장대한데 어찌 스스로 두 발을 묶었을까.







영달씨는 얼굴도 모르고 결혼한 처와 50년 넘게 해로했다. 슬하에는 1남 4녀를 두었는데 그 중 첫째 딸인 옥이가 온 동네 떠나갈 듯 꺼이꺼이 목놓아 운다.


"으아아앙~ 으으흐으으"


어린애처럼 맨땅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서럽게 서럽게 통곡한다. 머리에는 흰 핀을 꽂았고, 검은 저고리에 검정 치마도 둘렀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으~흐으으~

허구한 날 이 의자에 앉아서는.. 엉엉어어엉~~"  


고인이 된 영달씨를 완전히 떠나보내기 전에 그가 살던 집터를 가족들이 함께 둘러보는 일. 막바지 장례 절차인 그 순서에 이르렀을 때 옥이의 응어리도 절정을 치닫았다. 으어엉. 으어어어엉. 그렇게 얼마나 울음했을까. 주인을 여읜 의자를 보며 분풀이를 토해내던 옥이가 급기야 영달씨의 유품인 그것을 하늘로 높게 들어올렸다. 콰당탕탕탕. 그리고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바닥으로 세차게 내팽개쳤다.



모든 게 망가졌다. 영달씨의 자리도 부서졌다. 정말 영혼이라는 게 있을까.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정말로 무지개다리라는 게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영달씨도 그날 그 자리에서 옥이의 울부짖음을 듣지 않았을까. 사는 내내 소원하게 거리를 두었던 딸자식. 왜 한번을 품어주지 않았는지. 왜 잠시도 곁을 주지 않았는지. 결국 아무것도. 끝끝내 알 수 없게 되었다.


영달씨는 떠났다. 미처 말하지 못한 속내를 품고 아주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가는 날까지 누구에게도 손 한번 내밀지 않고, 텅 빈 의자만 외로이 남겨둔 채로 그렇게 그렇게 영영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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