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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Dec 20. 2022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

Me Before You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극장 데이트를 즐겼다. 2년 남짓한 교제 기간 동안, 못해도 서른 편은 족히 관람했을 것이다. 한 달에 한두 편은 꼬박 챙겨 보았으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 주말마다 팝콘을 들고 대형스크린 앞에 앉기를 수십 번.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테아 샤록(Thea Sharrock) 감독의 ‘미 비포 유’를 택하겠다.



2016년 6월 개봉작이었던 <Me Before You>는 영국 작가인 조조 모예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유능한 사업가이자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윌. 미모의 애인까지 두었던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불의의 사고를 겪고 전신이 마비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윌. 그는 결국 스스로 안락사를 준비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간병인으로 일하게 된 루이자. 줄무늬 꿀벌 스타킹을 신는 그녀는 패션 센스만 남다른 게 아니라 멘털 센스도 하이 레벨이다. 윌이 아무리 까탈스럽게 굴어도 끄떡없다. 루이자 특유의 선한 발랄함 앞에서는 열패감으로 똘똘 뭉친 철벽남도 무장 해제가 된다.


1시간 50분의 러닝 타임이 지나가고 객석에 환한 불이 켜지던 순간. 나는 그때 목격한 남편의 얼굴을 여태 잊을 수가 없다. 그 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를 함께 보았지만 그가 그토록 온몸으로 흐느낀 건 그날뿐이었다. 인파에 휩쓸려 극장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남편은 내내 영화에 잠겨있는 듯했다.


“그렇게 슬펐어?”

“내가 왜 이러지... 오늘따라 감정이 주체가 안되네.”


보통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로맨스는 남편이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그보다는 액션이나 히어로물을 탐색하며 군침을 흘린다. 그런 그이기에 그날의 오열은 참으로 생소한 광경이었다. 그 바람에 내 눈물은 명함도 못 내밀고 쏙 들어가 버렸다. 우리는 극장가를 빠져나와 정처 없이 걸었다. 손을 맞잡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나도 그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남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이제 왜 울었는지 물어봐도 돼?”

“나도 모르겠어. 그냥...

내가 그 남자주인공이라면 너무 비통할 것 같아서.”


전신마비 환자를 사랑한 간병인. 영화는 단순한 러브스토리에 그치지 않았다. ‘존엄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던져 아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물어왔다. 당시 남편의 나이는 서른넷이었고, 나는 서른셋이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출발선을 앞에 두고 장밋빛 미래만 그리던 우리가, 윌과 루이자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사랑의 끝자락을 맛본 것이다.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인생. 생각지도 못한 미지의 세계로 부지불식간에 데려간다. 덕분에 나는 고민할 기회를 얻었다. 내가 만약 루이자가 된다면? 아무래도 그런 일은 애초에 성립되기 어렵다. 나에겐 윌의 우울을 걷어낼 발랄함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냥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결여돼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생각이 과하게 많아서 나의 근심 바이러스가 환자에게 전이되기라도 하면 아뿔싸. 큰일이다. 그래도 상상은 자유니까 성별과 관계없이 윌의 입장에도 대입해 봤다. 내가 그라면 어떨까. 내 수족인데 내 의지대로 쓸 수가 없다. 좁은 방 안에 갇혀서 매일 나의 무기력함과 직면해야 하는 윌의 하루는 보통의 24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끔찍하겠지. 내가 그 입장이 된다면 루이자에게 사랑을 말할 용기가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 두고도 존엄사를 결심할 강단은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것도 저것도 다 사랑이라는 것.


그 영화를 보고 1년 즈음 지났을 무렵. 우리는 여러 하객들 앞에서 혼인을 서약했다. 그 뒤로도 시간은 성실히 흘러 오늘이 왔다. 2022년 현재, 투 플러스 원이 된 우리는 이달 초에 있던 결혼 5주년 기념일에 네 살 아들을 사이에 두고 초를 불었다. 삼한사온인 요즘의 겨울날처럼 마냥 좋지도 마냥 나쁘지도 않은. 다분히 일상적인 나날이 실타래처럼 이어지고 있다. 비교적 평온한 결혼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도 언젠가 엔딩씬을 찍어야 할 날이 오겠지. 인생의 황혼에 서는 그때가 되면 이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작 소설을 집필한 조조 모예스는 제목으로 쓴 ‘Me Before You’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Who I Was Before I Met You’. 그러니까 직역하면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내가 왜? 작가의 부연을 들어봐도 여전히 미궁이다. 제목에 담긴 창작자의 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를 찍는 건 영화인들의 몫이지만 감상은 관객들의 것이니, 나는 이 제목의 의미를 ‘루이자가 윌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당신을 잃어서 슬프지만 그래도 당신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Me Before You’는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라고 내 식대로 정의를 내려본다. 결과적으로 루이자는 윌을 떠나지 않았고, 윌은 루이자를 떠났다. 사랑에 있어 모범답안이란 없다. 윌도 루이자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택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새드 엔딩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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