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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Dec 16. 2022

남사친과 싸구려 구두

이상형보다 이성관

부산에서 대학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남자사람친구가 있다. 이름은 현준. 소탈하고 성실한데 의리까지 있어서 그 친구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들끓었다. 아참. 중요한 걸 빼먹을 뻔 했는데, 결정적으로 술도 썩 잘 마셨다. 소주 세 잔에 빨간신호등이 되는 내 기준에서 볼 때 현준이는 못 말리는 술고래였다.


“오늘도 술이야? 작작 좀 마셔라.

한달 치 식대보다 술값이 더 나오겠네, 친구놈아!”


신기한 건, 밤마다 그렇게 부어라마셔라 들이붓고도 다음날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소곳한 자태로 강의실에 나와 앉아있었다. 하여간 그 녀석은 뭐든 열심이었다. 아재개그 같은 실없는 농담을 늘어놓는 것만 빼면 흠잡을 데 없는 학우였다. 무엇보다 성격이 원만했다. 그랬으니 경계심 높은 나 같은 까칠이가 그 애 앞에서는 주저리주저리 별소릴 다했겠지.   


“이 구두 어때? 아까 서면지하상가에

나갔다가 사 왔걸랑.”

“여자애들은 진짜 이해가 안 간다니까.

이 가파른 산만디에서 구두가 말이 되냐?”

“논점 흐리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자세히 좀 봐봐. 어때? 만원짜리 구두치고 이 정도면

퀄리티 최상 아니냐? 역시 내 안목이란~ 크크.”


현준이는 그 뒤로 별말이 없었다. 어차피 세심한 코멘트를 기대하고 건넨 말은 아니기에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몇 년 후 어느 날. 오랜만에 얼굴을 본 자리에서 녀석이 뜬금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


“사실 나 그때 좀 놀랐어.”

“그때라니? 언제?”

“네가 만원짜리 구두를 사 왔다고 하면서

사람들 많은 강의실 앞에서 자랑했을 때 말이야.

내심 충격이었거든.”

“대체 뭐가 얼마나 충격이었길래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는 거야!”

“이건 절대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말하는 거야.  

아무튼 그날 너의 그 태도는

내가 이성관을 구축하는 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것만 알아 둬.”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 곰곰이 곱씹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조용히 되물어 보았다. 몇 번을 자문해도 답은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하여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똑같이 그 만원짜리 구두를 사 들고 마음 통하는 친구에게 내보이며 스스럼없이 자랑할 것이다. 그곳이 설령 붐비는 강의실 앞이라 해도 상관없다.


싸구려 신발을 신는다고 해서 나의 존재까지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 돈도 마음도 잘 아껴두었다가 쓸 자리에 귀하게 써야 한다는 신념. 지금껏 나를 지탱해 온 삶의 기준이 누군가 다른 이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못 낯설고 신기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의 이성관에 대해서도 요목조목 따져 보았다. 내게 호감을 주는 이성상에 관한 몇 가지 견해를 텍스트로 옮겨본다.


1. 외모가 아무리 근사해도 말투가 차가운 사람은 별로다   

2. 적당한 개그감으로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좋다

3. 사랑을 충분히 받아 본 사람은 배려의 DNA가 다르다

4. 재미있게 사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5.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삶을 윤택하게 한다     


질문에 답을 내리는 동안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그동안 내게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이들은 많았다. 한때 연예인이 대거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코너가 ‘이상형 월드컵’이었을 정도이니 이상형에 관한 세간의 관심은 지대하다. 그에 반해, 어떠한 이성관을 구축하고 있는지. 이성에 대한 관점이나 견해를 물어오는 이는? 그런 경험이 있긴 있었던가.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상형이라는 단어를 풀어서 얘기하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다. 살면서 그런 이를 만날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불확실한 확률에 기대기보다 현실적인 이성관을 확립하는 게 현명하고 실속있는 처사가 아닐는지.


현준이는 그 뒤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나보다 먼저 혼인이라는 제도권 안에 진입했고 자신과 똑 닮은 아들도 낳았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날 내가 그 친구에게 어떠한 이성관을 심어주었는지. 그 영향이 지금 그의 삶에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지. 못 보고 지낸 세월만큼 물어볼 말들이 쌓여간다. 부디 내가 일말의 책임의식이나 부채감을 갖지 않도록 내 친구 현준이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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