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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Dec 14. 2022

일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소신

체코로 이사 오기 전에는 라디오 작가로 글을 썼다. 당시에 썼던 대본에는 콩트(conte)가 많아서 글 쓰는 재미가 좋았다. 게다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섭렵할 수 있으니 귀가 간질간질 호강을 한다. 최신 아이돌 앨범부터 R&B, 팝, 포크송에 트로트, 국악까지 넘나드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더없이 풍요롭지만 가요계는 말도 못 하게 치열하겠구나 생각하니 남일이지만 아주 남일 같지는 않았다.


그렇잖아도 과열된 시장에 ‘둘째이모 김다비’ 같은 혜성까지 등장하면 밥그릇 싸움은 한층 더 거세지겠구나 싶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희극인 김신영이 이젠 노래로도 웃음을 주려나 보다 하고 가벼이 넘겼는데, 반복이 이래서 무섭다. 두 번 듣고 세 번 들으니 가사가 이건 뭐, 요즘 말로 뼈를 때린다.



야근할 생각은 마이소

오늘은 얼마 만에 하는

데이트 날인데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

가족 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마지막 줄이 압권이다.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하는데 정신 놓고 웃다가 머리를 한 대 콕 쥐어 박힌 듯한 반전에 이내 웃음이 가셨다. 예상치 못한 통렬함이 짧은 재미 뒤에 긴 여운을 주는 <주라주라>. 이 발칙한 노랫말처럼 가족 같은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회사는 집이 아니고 일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나조차도 일만 떠올리면 두통이 옵션으로 따라붙었다. 방송국의 특성상 편집본은 늘 급하게 주어지고, 협업의 과정에서 마무리 주자로 뛰는 건 언제나  작가의 몫이었다. 유려한 글은 고사하고 시간 내에 뭐라도 써서 분량만 맞출 수 있다면 감지덕지인 상황. 그렇게 쫓기듯 글을 쓰며 지새운 밤이 십수 년이다.


일이 사랑의 대상이 맞다면 사랑할수록 예뻐지고 빛이 나야 하는데 나의 경우는 정확히 반대였다. 매일 전속력으로 시들어갔다. 잘하려는 마음이 풍선처럼 커져서 마음의 열병이 생길수록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다.


그런 워커홀릭으로 살다와서인지는 몰라도 체코인들의 근무 풍경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나라에서 생활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작금에도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내가 한창 생방에 들어가고 바쁘게 일했던 오후 2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 퇴근길에 오르는 체코 아빠들.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얼추 들어보면 새벽 대여섯 시 께 일어나서 아침을 열고 오후 두세 시면 일을 접는다. 간혹 잔업을 하는 경우에는 추가 수당을 받지만 돈을 더 벌기 위해 일부러 퇴근 시간을 늦추는 이들은 많지 않다.  


웬만하면 정시에 퇴근해서 아내 대신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픽업하거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그도 아니면 낮술을 한잔 하거나, 지금 같은 겨울엔 집 앞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거나 하면서 저녁도 아닌 무려 오후가 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런 일상을 사는 체코 사람들은 거꾸로 우리를 의아하게 볼 것이 자명하다.


아시아의 한국과 유럽의 체코. 두 국가의 차이를 지표로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21 세계행복보고서를 훑어보았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149개국 가운데 62위로 중위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에, 체코는 우리나라보다 GDP(국내총생산)는 낮지만 행복지수는 30위 안에 드는 상위권에 속한다.


역시 일과 행복은 친해질 수가 없는 걸까. 생산성이 높은 나라와 행복감이 높은 나라. 만약 거주권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쪽에 더 많은 인구가 몰릴지 몹시 궁금하다.


MZ세대 구직자 2명 중에 1명은 기업 인지도보다 복지와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우선시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런 일이 기삿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문화로 정착되는 날이. 적당히 일해도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는 그런 날이... 한국에도 언젠가 찾아와 줄까. 격무에 일상이 잠식되지 않는 세상. 당연한 복지를 눈치 보지 않는 사회. 그런 환경이라면, 어쩌면 일도 사랑하게 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적이 없다. 당장에 시류를 바꿀 수 없다면 내 마음의 물줄기부터 바꿔보자. 일을 사랑하지 말고 일을 하는 주체인 나를 더 아끼고 보듬자. 일은 그저 생계를 이어주고 나를 성장시켜주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 직업과 나를 분리해야만, 만에 하나 일이 그릇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러니 제발 사랑은 하지 말자. 어디까지나 일은 일이고,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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