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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s of Life Oct 31. 2021

사실은 고프로가 사고 싶었어

@HK 

꼭 미래 세계 같다. 비교적 나쁜 의미에 가까운. 때가 되면 누군가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구성된 영양이 훌륭한 식사를 두고 벨을 누른 후 사라진다. 쓰레기는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만 내어놓을 수 있고, 이조차도 마스크를 써야만 문을 열 수 있다. 바깥 풍경은 그대로지만 창문을 열 수 없고, 열고 싶다는 생각 자체도 어림없다. 방 안에 가득 쌓인 여분의 수건과 시트, 화장지, 일회용 칫솔, 치약, 비누 등 세면도구들, 봉지 가득 수저에 수십 병의 물, 준비된 비품이 줄어들 때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을 어림잡아 본다. 2021년 10월 31일, 격리 8일 차 난데없이 여기는 홍콩이다.


사실은 고프로가 사고 싶었다. 살 수 없다기보다는 사서는 안 된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는 회사원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단계의 셈이 내린 결론이다. 예상 수입에 예상치 못한 수입이라는 행운을 더하고, 예상치 못한 지출과 수입 취소 등의 불운을 더하니 다시 마이너스, 얼마나 가지고 싶은가라는 나의 의지와 위기가 온다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생각하며 끊임없이 계산기를 굴려보지만, 최종 결정은 사실은 순간의 욕망이 할 것임을 알고 있다. 회사원은 물을 것이다. 그리 가난한데 꼭 사야 하냐고. 매우 논리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순간의 욕망마저 없다면 반백수 프리랜서가 살 수 있는 물건은 세상에 없다.


고프로와 자가 격리 그리고 홍콩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8일째 똬리를 틀고 앉아있자니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이었다면 쓸모없는 물건을 미친 듯이 사들였을 것이다. 반백수도 감당할만한 자잘한 많은 물건들, 하지만 열 개가 모이면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한 물건들. 홍콩의 인터넷 쇼핑은 다행히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일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고프로가 사고 싶다"라는 더 위험한 생각에 도달했다. 고프로가 있으면 이 지루한 격리 생활이 한 편의 영화가 될지도, 고프로로 홍콩 생활을 기록하다 어느새 초인기 유튜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며, 언제 또 겪을지 모르는 이 특별한 자가격리를 완벽하게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프로와 자가 격리 그리고 홍콩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행히 내 고장 난 머리에서도 최소한의 경보 기능은 작동한다. 출국 직전 이사로 지출한 거액의 카드값을 여전히 갚고 있으며, 홍콩에 머무르는 2~3달간은 다른 일을 할 시간도 멀티력도 없다. 물론 일해달라고 줄 서 있는 사람도 없으니 '땅끄부부의 칼소폭 유산소'나 하라는 바람직한 사이렌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그래서 카드사의 해외 직구 무이자 할부 대 이벤트 페이지를 덮고 다시 브런치를 시작했다. (물론 22개월 무이자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상 사연 있는 여자처럼 사진도 잘 안 찍는 내가 뭔 고프로, 에라 모르겠다 에그와플에 버블티 한 잔 배달시키고 위험한 생각을 쫓아내고 또 쫓아가며, 사고 없이 8일 차가 저물길 기대한다. 더 이상의 결제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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