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그랬으면 좋겠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마냥 반갑고 궁금한 게 많은 나도
어느 순간 입을 닫고 맘을 닫았어.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몇 개월을 부대끼며 살았어도
참 멀디멀었었다.
그때 상황도 있고 해서,
마침 동갑인데 서로 의지하면 좋으련만
좀처럼 맘을 열지 않더라고.
뭐, 나도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아쉽긴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 받아들인 것 같아.
하루는 복도를 지나는데,
정말 우연히 여러 사람에 둘러싸여 환히 웃는 얼굴을 본 거야.
리더까지 하고 있다는 어느 좋아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모르는 사이라 결론 지었기에 낯선 그 모습이 서운하진 않았고,
'역시, 저런 모습도 있구나!' 하며
주제넘게 안도감이 들었던 게 기억이 나.
나 내심 걱정됐나 봐. 웃기지.
고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더랬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고래였었나,
아마 그랬을 거야.
고래 인형 가득한 책상 위
지극히 직관적인 제목의 <고래> 전집을 펼쳐 둔 어느 날.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운 두께였는데
그 애정이 난 너무나 신선한 거야.
그래서 용기 내어 고래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며 행복에 벅차 답해주었어.
비록 간만의 대화도 얼마 못가 도로 흩어졌지만
나도 덩달아 들떴었다 그때.
학기가 끝나고
그렇게 우린 제대로 안 적이 없이 헤어졌는데,
그 후로 우연히 마주쳐도
자연히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어.
여지껏 관계에서 이런 적은 없긴 했는데
흠, 이것도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했어.
문득문득
마음의 벽이 아직도 굳건한지,
혹 조금은 허물어지지 않았을지,
고래는 여전히 좋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어.
머지않아 증발하는 소소한 호기심 정도였지만.
여느 때처럼 바쁜 삶 가운데
다시 걸음을 옮기기 바빴거든.
어차피 내 물음을 반기지도 않을 거라 판단해서.
그리고 얼마 뒤,
뜬금없이 괜찮냐 묻는 쏟아지는 메시지들에
나 영문도 모른 채
괜찮은데 무슨 일이냐고 되묻기만 했잖아.
네가 영영 떠난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야.
분명 모르는 사이였는데,
꽤 오래 힘들었었다.
그런 장면이 티브이든 영화든 나오기라도 하면
두 눈 질끈 감고 고갤 돌리고 채널을 돌리기 일쑤였거든.
머릿속 퍼즐 조각들이
그제서야 하나둘씩 맞춰졌는데,
완성된 퍼즐에 서글펐어. 이상하리만큼 허탈하더라.
시간이 많이 흘렀네.
근데 지금도 어디선가 고래 그림을 마주치면 생각이 난다.
고래를 좋아하던 스물 둘, 그 어리고 여린 맘이 어떤 맘이었을지.
하늘에선 고래 곁에서 한결 자유로운지.
그리곤 곧이어 기도해.
그랬으면 좋겠다고.
부디 행복하면 좋겠다.
내게 고래에 대해 들려주던, 꼭 그때처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