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도'에게
너를 아는 20년 간 우스갯 소리로 주고받곤 했지.
"누가 먼저 결혼을 할까", "누구와 결혼하게 될까"
"결혼하면 행복할까", "그럼 넷이 왕왕 놀러다니자···"
그날이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일주일이 남아버렸네.
위아래층 살며 한없이 붙어 지내다
내가 이사를 가고 우리 각자 삶에 흩어졌을 때
떨어져있어도 맘 한켠엔 늘 네 자리가 있었지!
자주 가던 옥상의 다락방도, 집 앞 놀이터도,
함께 듣던 노래나 노나먹던 아이스크림도
돌아보면 사소한데 그때는 하나하나 우리 세상이었다.
대학생이 된지 얼마 안 되어 한창 어른인 척 할 때는
네 덕에 용기 얻어 배낭 하나 업고 유럽엘 향했는데
두 손 잡고 바삐 다닌 두 달 동안 청춘을 마시느라 행복했었어.
순백의 신부야.
나는 너의 새빨간 열정도, 시퍼런 상처도,
보라빛 눈물도, 노오란 순수함도 다 지켜보았지.
수많은 색깔들 끝에 만난 흰색임을,
그 위에 더 예쁜 색을 묻혀갈 너임을 나는 다 알고 있다.
길을 잃은 것만 같을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여전히 고민 않고 펼쳐들 수 있는 지도로 남아줄래?
혹 삶 가운데 먼지가 좀 쌓여도, 후우- 불며는
금세 피식 웃고는 안아주는 서로가 되자, 우리.
기쁨만 가득할 네 미래를 기대해.
사랑하는 너의 사랑을 축복해.
축하해. 너의 결혼!
- 경령(사전) -
2023.04.09.일
유럽 여행 때 길을 잘 보는 현아는 지도를, 영어를 할 줄 아는 나는 사전을 맡았다. 그때 부로 어디를 가도 지도와 사전은 각자의 암묵적 역할이 됐다. :)
사진은 오늘 결혼식 때 받은 꽃다발 박제.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