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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조 Mar 16. 2023

출근 대신 탈출

직장에 다니면 하루 8시간, 일주일 40시간을 출근해서 일한다. 일 년 52주에 휴가 2주를 빼면 40시간씩 50주 2000시간을 일한다. 5년이면 1만 시간이고 10년이면 2만 시간이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시간을 제시한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회사생활 5년 만에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비로소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대리 직급을 5년 차에 달아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략 1만 시간의 법칙과 맞아떨어진다.


우리가 회사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업무 수행 능력이 그만큼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을 키우기까지 대략 1만 시간을 회사에 할애한다. 출퇴근 시간, 퇴근 후 시간, 주말 혹은 휴가기간, 그리고 야근과 조기출근 시간을 생각하면 5년간 1만 시간을 훨씬 상회하는 시간 회사일에 매달려 있게 된다. 휴식하면서도 회사 일에 대해 완전히 뇌를 Off 하고 지낼 수는 없기에, 해당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 소모한다. 매주 토요일 밤만 되고 일요일 하루만 지나면 또 출근해야 된다는 불편함이 차오르는데, 나도 모르게 일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회사에서 5년간 1만 시간을 투자하며 전문가가 되고, 또다시 5년을 더 투자해서 2만 시간을 투자하면 단순 전문가에서 나아가 프로젝트를 총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시간 투여와 인원 관리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팀장, 임원으로 이어지는 직급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계속해서 회사에서의 경험을 늘려나가며 조직 안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고, 큰 성취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회사에 투자하는 시간이 조금 아깝게 느껴진다.


한 분야에서 1만 시간의 훈련을 통해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고, 회사에서 업무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강제든 어쨌든 아무튼 주 5일 출근을 통해 시간 투여를 지속적으로 해 온 것에 기반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회사일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회사 다니는 시간을 오롯이 투자한다면 그 분야에서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더라도 신입 때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연차에 따른 성장이 엄청남을 깨닫게 된다. 심하게는 매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을 느끼며 일요일 저녁 눈을 감고, 7일 중 5일을 버리고 2일 만을 건지는 삶을 반복한 끝에 얻은 성과다.


회사생활이 만족스럽고 그 안에서 충분히 자아실현을 느끼며 충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회사생활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우리는 정말 엄청난 시간을 회사에 쏟아붓고 있다. 사실상 인생 전체를 올인하다시피 하며 회사를 위해 헌신한다. 7일 중 월화수목금 5일을 출근하고 출근을 제외한 시간은 출근을 위한 휴식과 재충전 시간으로 쓴다. 주말은 주중의 출근을 보상받기 위한 소비의 시간이다. 소비는, 소비를 지속하게 하기 위해 출근을 필요로 한다. 출근과 휴식이 반복되며 출근은 휴식을 요하고 휴식은 출근을 부르는 완전체가 되어 굴러간다. 몸이 망가지거나 정신이 망가져서, 혹은 연차가 너무 쌓여 더 이상 회사에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회사에서의 쓸모가 없어진 사람은 냉정하게 내쳐진다. 일부 규모가 크고 체계가 어지러운 회사는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소수의 사람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포지션은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의 버그 같은 존재기에 논외로 한다. 대부분은 쓸모가 없어지면 본인이 회사에 폐를 끼친다고 생각해 자발적으로 퇴사하거나, 그 정도 눈치가 없는 사람의 경우 회사에서 눈치의 강도를 올려 내보낸다. 아무리 오래 버텨도 법적으로 정해둔 정년이 있기에 언젠가는 쫓겨나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에서 나온 사람이 홀로 서는 확률은 아주 낮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90% 에 육박하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는 것이, 회사에서의 경험은 어디까지나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의 경험에 불과하기에 그렇다. 회사가 사회와 동의어가 아니기에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나는 곧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르지 않다. 우물에서 쳐다보는 하늘은 한없이 푸르게 보이지만 우물 벽 역시 한없이 견고하고 높게 느껴진다. 이 벽이 없이는 혼자서 살아갈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도태되고 마는 것이다. 회사 없이는 살아갈 능력도, 용기도 거세당한 채 인생을 가스라이팅 당하는 줄도 모르고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내야 한다.


굳이 회사 안에서 이렇게까지 시간을 투자하며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야 될까.


5년간 1만 시간을 쏟아부어서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굳이 지금 다니는 회사를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을까.


혹은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니라 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즐겁게 일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회사에 쏟아붓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리고 그런 시간이 뒷받침되었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점을 되짚어본다면, 출근 대신 탈출 단추를 누르는 선택지가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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