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혜 Nov 13. 2022

낙엽처럼

주간일기처럼 쓰다

  11월 13일은 둘째 주 마지막 날이며, 셋째 주를 여는 날이기도 하다. 대문 근처에도 가지 않고 종일 놀며, 양배추 김치를 담그고, 바닥에 먼지만 닦아내는 것으로 집안일을 끝냈다. 김장하지 말라는 남편의 요청인 '양배추 김치'를 빨갛게 담갔다. 이번 여름에 양배추 물김치를 담가봤는데 의외로 남편이 좋아했다. 위장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남편을 위하여 만들기도 했지만, 열무물김치를 담다가 짭아서 그 국물을 떠내어 임기응변으로 하였다. 어쨌거나 좋아하여서 또 유산균 덩어리라는 양배추 절임을 만들었더니 넌지시 불만을 표시하였다. 오늘은 신경 써서 실행에 옮겼다. 일은 했지만 손녀를 보호하고, 돌보아야 하는 긴장감을 느끼지 않아서 편안한 하루였다.


   내년 1월에 복직할 딸의 심정이 복잡다단하다. 욕심만큼 만사가 돌아가지 않으니 화가 내면에서 폭발할 직전이다. 육아 기간이 더 길어지면 심각한 현상이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아니 할 말로 주부 혼자 연년생 키우는 엄마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내가 만난 그들은 어른의 도움 없이 키운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도 있는데 딸은 내가 육아를 도와주어도 활화산이다. 눈치가 둔한 사위는 딸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미인 나에게 화살이 많이 날아온다. 다행히 내가 자존감이 높고, 불심으로 무장된 사람이라 흔들림이 적어서 격렬한 말다툼이나 기싸움이 거의 없다. 딸은 나한테 짜증을 부리고 돌아서면서 내게 미안하다며 즉시 사과를 한다. 그 점이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지도 모른다.



  손자가 어린이집에 가려면 어미 속을 다 뒤집는다. 딸이 최대한 나의 도움 없이 등 하원을 시켜 보려고 웬만하면 오후 하원 때 오라고 하였다. 하원 후 두 녀석을 데리고 저녁 식사 준비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이 녀석이 온갖 말로 씻지 않으려 하고, 어멈이 인내심을 발휘하여 씻기고 옷을 입히려면 메뚜기처럼 다른 곳으로 튀어버린다. 결국 참다못한 어멈이 입은 양 안아서 어린이집에 데려갈 것이라고 고함을 지른다. 내가 손자를 달래면 또 개입하지 말라며 나에게 화를 낸다. 손녀는 어멈의 눈치를 보며 내게 안겨서 가만히 있다. 딸은 아들을 다루는 교육적인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고, 아들이 늦더라도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이미 바닥이 난 사람이다.  


  내가 없는 날 딸은 대부분의 저녁을 믿고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점에서 사 먹거나 그곳의 조리된 음식을 사다 먹었다. 아이 둘 데리고 씨름하는 대신 쉬운 방법을 활용하였다. 딸은 최대한 나를 덜 힘들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반나절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나도 아니어서 되도록 딸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스스로 들고 있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식기세척기와 세탁기 등 인간을 편리하게 하는 가전제품이 있어도 정작 사용하는 당사자는 편안하지 못하였다. 마음이 불편하면 그 어떤 무엇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옆에서 좋은 말, 귀가 솔깃한 말, 내가 아는 이론일지라도 실천하면서 느껴야만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목걸이가 되고, 장신구의 가치가 있듯.


  딸이 토요일 오후에 바람을 쐬러 간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 시간 앞서 아파트에 가서 딸에게 짧은 말로 하고 싶은 많은 것을 줄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해 주었다. 하고 싶은 것은 욕심(欲心)이다. 이 욕심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욕심(慾心)이 된다. 한자는 탐낼, 욕심 욕이지만, 보통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없으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혼자 화를 삭이는 사람이면 소화제를 달고 살아야 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그리고 내 딸처럼 입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 사람은 옆의 식구가 심히 괴롭다. 불같은 성질을 부리는 본인 또한 결코 시원하지 않다.


  사람은 서로에게 승자(勝者)가 되어야 한다. 윈윈(win win) 하는 것이 가장 보기가 좋다. 그러려면 나의 욕심이 단순하면 된다. 어렵고 힘든 것부터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좀 뒤로 미루면 어떻고,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누가 뭐라나.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어지간하면 하지 말자. 하긴 이것도 훈련이 되어야 실천하기도 쉽다마는. 그렇지만 노력도 해보지 않고 욕심(欲心)이 욕심(慾心)으로 변하도록 그냥 놔둘 것인가.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사위가 딸을 위로하려고 이 승환 콘서트에 다녀왔다고 했다. 사위가 민감한 아내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이 내심 별로지만, 그것은 다 감추고 사위에게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앞세웠다. 복직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하여서 그러니 사위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며 감싸주라고. 딸의 편이 되어주라고 부탁했다.




사진 : 정 혜.



대문 사진 : 대구 율하동 어느 아파트 단지 옆 가로수 길.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함께 하는 길에는 벚나무의 붉은 단풍잎이 더 많이 내려 앉아서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아래 사진 : 은행나무 초록 잎이 연두에서 노랑연두로, 노랑연두에서 노랑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욕심欲心  #욕심慾心  #가로수  #단풍  #낙엽처럼  

작가의 이전글 너여야만 하는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