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지 Mar 28. 2023

#5 고양이

그날도 어김없이, 매일 가는 방향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늦은 퇴근이었지만 자주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은 밤이었다. 집까지는 대략 40분이 걸렸다. 주택가 가로등의 불빛은 약하고 어두웠다. 자전거 라이트는 일찌감치 고장이 났다. 나는 가로수 나무들의 음영에 가리어져 희미한 불빛만을 의지하며 달렸다. 그때였다. 작업실에서 출발한 지 10분 정도 되었을까. 내 자전거 바퀴 아래 물컹한 무언가를 느꼈다. 이건 마치 흐물흐물해진 자동차 방지턱을 지난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 반사적으로 자전거 브레이크를 걸어 끼익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뒤를 돌아보는 것이 두려워 자전거 앞바퀴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디에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을 춤추게 하고, 어둠 속 고양이들의 눈이 번쩍였다. 목격자가 있었을까? 지나가던 행인이 어두운 골목의 그림자 뒤편에 숨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뒤에 있는 이 물체는.., 자전거 바퀴로 짓눌려버린 이것의 정체를, 나는 알고 있었다. 어두운 가로수길 아래 고장 난 라이트 때문에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어 그저 아스팔트의 감촉만을 의지하며 달리던 중 생긴 일이었다. 어째서 이것은 이렇게나 무방어적으로 나의 미약한 자전거 바퀴에 당한 것인가. 유일한 목격자들이 나를 어둠 속에서 내내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벗어나야만 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자전거 페달을 전속력으로 밟았다. 한참을 달려 거의 집까지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범죄의 현장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멀미가 났다. 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나는 어떤 긴 복도 위에 서 있었다. 그곳은 학교처럼 보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교실의 문을 열면 또 다른 교실이 나왔다. 나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무엇을 찾는지는 몰랐다. 그러다 문득 학교 밖 어딘가에 파란 호수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곳으로 가고자 했다. 처음 꾸는 꿈이 아니었다. 그렇게 몸을 뒤척이다 눈이 떠졌다. 


나는 밥을 먹고 얼굴을 씻었다. 로션을 바르고 편안한 옷을 골라 입었다. 가방을 챙기고 현관문 앞에 선 순간 이 문 밖에 어젯밤의 자전거가 있음을 깨달았다. 현관문의 고리를 천천히 돌렸다. 문을 열고 나가 자전거 바퀴를 살폈다. 핏자국 같은 것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일까. 하지만 거기엔 어떤 자국도 없었다. 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목이 말라 편의점에 들러 물을 한 병 샀다. 뚜껑을 따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핸드폰 카카오맵으로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도로엔 차들이 가득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비어있는 유모차를 끌며 길을 걸어갔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 창 밖을 멍하니 보았다. 그때 덜컹. 버스는 방지턱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울렁거리는 멀미를 느꼈다. 이번엔 물컹 거리지 않는 턱이었다.







브런치 주간 연재 | 화요일의 초단편 소설

브런치를 통해 일주일에 한 편씩 초단편 소설과 함께 그림을 발행하는 개인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화요일 마다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목차

/ 배경에 속한 사람

/ 하루종일 잠만 자는 사람의 이야기

/ 여름 토스트

/ 붉은 꽃

/ 두더지

/ 고양이

*발행 순서는 상이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4 붉은 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