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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름 May 10. 2023

"퇴사하겠습니다."

- 유한한 인생에서 무한한 길을 찾다. 황여름 일대기 (1)

[팀장님, 얼굴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되실 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황여름 대리는 크게 결심한 듯 채팅방을 바라보다 엔터키를 눌러버렸다.

1 표시가 언제 사라질까...

나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궁금하지 않은 듯 일을 하다가 다시 채팅방에 들어간 찰나였다.


'어. 1이 없어졌어'

'답변이 왜 없지?'

'그래... 무슨 소리 할지 보자마자 안거지. 자기도 분명 쫀거야'


*


황여름 대리는 중견기업 홍보팀 소속 7년차 직원이다. 이 회사에 다닌지는 이제 막 2년이 넘었다. 문과 중에서도 순수 인문학을 전공한 황여름은 졸업 때가 되서야 자신의 전공으로는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취업을 위해 안해본 일도 없었다. 00그룹 서포터즈, 대학생 봉사단, 대학생 기자단 등의 대외활동은 빼고. 중고신입과 같이 그런 대외활동도 대외활동을 위한 대외활동이 필요한 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대학생의 황여름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토익 점수 높아야 한다니까 학원 다니고, 말하기 점수도 있어야 한다고 해서 스피킹 시험도 봤다. 하지만 그 점수가 취업을 시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벚꽃잎이 흩날리던 학기 중 어느날, 여름은 친구를 따라 중앙도서관이 주관하는 '독서클럽'에 들어갔다. 거기에 들어가면 지원금도 주고 책도 준다고 해서. 그렇게 그녀는 난생 처음 서평이라는 것을 썼다. 인문학 전공이라 글쓰는 과제, 시험은 매우 많았지만 내 주관을 가지고 쓰는 글쓰기는 처음이었다.


헌데 그것이 글쓰기 인생의 시작이 될지 그땐 그녀도 몰랐다. 그 서평이 중앙도서관이 실시한 대회에서 3등을 한 것이다. 크게 공들여 쓴 글도 아니었다. 그당시엔 입상을 해서 기쁜게 아니라 문화상품권 15만원을 줘서 기뻤다.


그렇게 그녀는 졸업반이 되었고, 100개가 넘는 서류 탈락 메시지가 휴대폰 문자함을 가득 채웠다. 메시지는 매번 똑같았다. '안타깝게도'라는 말로 시작해 '이번 공채에서 귀하를 모실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가 쓰인 문구 말이다.


계속되는 탈락에 그녀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대폭 수정하기로 했다. 하도 쓸말이 없어서 서평대회 이야기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쓰다보니 문득 '내가 글쓰기를 잘했나?' 싶었다. 그렇게 흘러서 여름은 지금 회사까지 왔다.


*


[어. 조금만 이따가]


생각보다 매우 심플한 답변에 여름의 한 쪽 입꼬리는 씩 올라갔다. 물론 콧방귀도 함께였다.

'그래 늘 이런식이지.'


그녀는 할말을 머릿 속으로 다시 되뇌였다.

'설득을 못하면 어떡하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메신저로 친구들과 이 상황에 대한 중계를 시작했다.

[에휴 나쁜X, 네가 그동안 고생이 많았지]

[면담도 잘할거야! 쫄지말고 할말 다해버려!]

친구들의 걱정어린 응원에 힘을 내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 30분 정도 흐른 것 같다.

이제 그녀도 포기하고 일에 집중을 하려던 찰나였다.


"여름아 지금 하자."

"아, 네넵!"

여름은 황급히 눈으로 빈 회의실을 찾아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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