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를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리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신천지’다.
신천지는 그 이름처럼 새로운 하늘과 땅을 보여주는 듯한 곳이었다. 상하이를 걷다 보면 익숙해지는 높은 빌딩 숲 사이에서 신천지는 그 풍경과 대조적으로 고풍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현대적인 감각이 담긴 상점과 레스토랑이 즐비해 있을 뿐만 아니라, 상하이의 역사적 흔적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건물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렇기에 상하이에 온다면 신천지를 빼놓을 수 없다. 마치 뉴욕을 간다면 타임스퀘어에 들러야 하는 것처럼, 신천지도 와이탄 못지 않게 그 자체로 상하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내게 있어 신천지는 단순한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2011년, 처음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난 이곳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신천지의 골목 골목을 거닐고 있었다. 그러다 한 재즈 바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워낙 어렸기 때문에 재즈바란 곳을 처음 온 것이었다.
내부는 어둑하면서도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음악과 함께 차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안은 만석이었고 서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로 내부는 꽉 차있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입장권이나 주문 없이 뒤에 서서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그때 무대에 선 가수는 존 메이어의 <Gravity>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대 위 가수가 불러주는 재즈의 선율은 귀를 사로잡았고, 마음을 어루만졌으며, 영혼을 울리는, 소울 넘치는 목소리는 공간을 가득 채우며 흘렀고 나의 기억 속에 깊이 박혔다. 난 그당시 <Gravity>라는 노래를 몰랐다. 그러나 이 노래는 꼭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가사를 들었고, 키워드를 외워 가사 찾기를 통해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여행을 다녔지만, 그날 밤의 상하이와 재즈는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었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상하이의 번화한 도시 속에서도, 이 작은 공간에서만큼은 고요와 평화가 존재했다.
신천지는 이외에도 즐길 수 있는 관광거리가 굉장히 많은 곳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티엔즈팡’이라는 곳이 나온다. 한국의 인사동이나 연남동과 닮은 티엔즈팡은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와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골목 사이로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소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거리 곳곳에는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역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상하이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가져갈 기념품을 사곤 했다.
티엔즈팡 근처에는 아주 오래된 골동품을 파는 시장도 있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와 더불어 각종 골동품과 수공예품이 진열되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황학동같은 느낌과 비슷한데 중국의 골동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고 가치있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중국의 골동품이라는 점에서 구매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오래된 중국풍 도자기부터 시간이 깃든 물건들, 그리고 각종 예술 작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나는 이 시장을 거닐며,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상하이가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옛 정취가 남아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신천지 인근에는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 중국 상하이에 자리잡은 이곳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이곳을 방문하며, 나는 잠시 여행의 여유로움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느꼈을 고단함과 치열했던 역사를 떠올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 역사를 직접 느끼고 되새길 수 있는 곳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단순히 신천지의 세련된 풍경만을 기대했지만, 이곳에서 느낀 역사적 의미는 나에게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신천지는 이런 상하이의 다채로운 매력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곳에서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굉장히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도심의 화려함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정적,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신천지를 상하이에서 꼭 가봐야 할 장소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다시 신천지를 찾으며 나는 그때의 재즈 바를 떠올렸다. 그 시절의 나는 낯선 도시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곳에서의 음악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지금의 신천지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같은 위로와 영감을 주고 있을 것이다. 13년 만에 찾은 그 곳에서 그때의 재즈바는 찾을 수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2012년 이후의 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재즈의 선율은 여전히 내 안을 채우고 있다.
나는 오늘도 존 메이어의 그래비티를 들으며 그때의 재즈를 떠올린다. 상하이의 밤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이 분수대는 신천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신천지에서 만난 조말론 팝업스토어
한국인이라면 꼭 들러야할 대한민국 임시정부
2013년 당시의 상하이 신천지 스타벅스. 2024년에도 똑같은 장소에 스타벅스 리저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