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대학생 시절과 같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 현지인의 삶에 녹아든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소소하게 내가 사랑하는 상해를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상하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은 황푸강을 따라 늘어선 고층 빌딩들과, 그 반대편에 자리 잡은 와이탄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상하이의 숨겨진 얼굴을 볼 수 있는 난징시루(南京西路)와 난징동루(南京东路)를 소개하고 싶다. 이곳을 걸을 때면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레 뒤섞인 상하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난징시루는 상하이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모습을 대표하는 거리다. 들으면 모두가 알만한 명품 가게가 모두 있다. 이곳에 서면 끝없이 이어지는 고급 백화점들과 명품 상점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마치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거리,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디스플레이들. 사람들은 마치 패션쇼를 걷는 모델처럼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천천히 쇼핑을 즐긴다. 난징시루를 걸으면 자본과 소비가 교차하는 현대 중국의 에너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쇼핑의 거리만이 아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현대 건물들 사이사이에 상하이의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서양식 건물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장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마치 시간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유령처럼 ‘여기가 난징시루가 맞나?’ 하는 인상을 준다. 마치 청담동, 압구정동 안에 한옥마을이 있는 듯한 이질감과 독특함이다. 이를 통해 상하이가 겪어온 변화와 그 속에서 잃지 않은 고유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고 굉장히 더운 날씨였지만, 그 모습이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난징시루에는 그 유명한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곳으로 2층 높이의 구리 로스팅 기계가 가장 유명하다. 상하이에 온 만큼, <Shanghai Roastery> 블렌드로 커피를 마셨다. 재미있었던 점은 로스팅된 원두가 긴 플라스틱 통로를 따라 매장의 커피 머신의 저장 공간에 들어갈 때, 직원들이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많은 양의 원두가 이동하기 때문에 소음이 발생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하는 동시에 “우와”하며 박수를 따라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큰 규모는 물론 다양한 경험을 다양하기 때문에 꼭 한번 오는 것을 추천한다.
난징동루는 그에 비해 조금 더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거리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야경으로 유명한 와이탄과 가까워서 밤이면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이 거리를 환히 밝힌다. 낮에는 오래된 간판과 길가의 상점들이 흥미를 끌고, 저녁에는 화려한 조명 속에서 살아나는 거리를 즐길 수 있다. 두 거리의 분위기는 명확히 다르지만, 난징동루는 그 자체로도 상하이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단, 중국 인구가 이렇게 많구나를 몸으로 체감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와이탄의 야경을 즐기고자 19~20시에 맞춰 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가더라도 많은 인구에 질려 제대로 된 야경을 감상하지 못한다. 추천하는 것은 야경이 보이는 레스토랑, 바에 가거나 아예 새벽에 산책 겸 가는 것이다. 아침 7시 정도에 난징동루에 위치한 호텔부터 와이탄까지 약 20분을 걸어 갔던 적이 있다. 이른 시간이지만 길가엔 청소를 하는 인부들, 아침을 맞이한 태극권을 하는 중년의 여성들, 이른 시간부터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등 보통의 상하이를 발견하며 친근하고 익숙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난징동루는 도보 여행을 하기에 좋다. 작은 골목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들이 오히려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네온사인들 속에서 소박한 상점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찻잔을 파는 가게들, 상하이 특유의 맛을 내는 길거리 음식들. 난징동루에서 느낀 감정은, 이곳이 상하이 사람들의 삶과 활기를 가장 잘 대변해 준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힌 거리, 그 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상하이 특유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한다.
두 거리를 걸으면서 내가 느낀 상하이는 단순히 '현대적이다' 혹은 '전통적이다'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도시라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바로 상하이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난징시루와 난징동루는 그 상하이의 다층적인 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들이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과 변화가 바로 이 도시의 고유한 개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하이의 매력에 스며들게 된 큰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