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 가기 전, 이번 여행의 컨셉은 추억여행이었다. 그러나 상해에서는 한 번도 호텔에 묵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블로그를 통해 어디가 좋은지 찾아봐야 했다. 역시나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호텔이 있었다. 위치는 상해의 중심에 위치한 난징동루였다. "난징동루라니 위치가 정말 환상적인걸?" 나는 큰 고민 없이 바로 예약했다.
이번 여행에는 동행이 있었는데 바로 남편이었다. 10년 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것은 나의 사회적(?) 지위일 것이다. 어느덧 9년 차의 직장인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결혼을 했다는 것. 남편은 베이징에서 6개월 정도 교환학생을 했던 경험이 있어 중국에 대한 환상도 거부감도, 아무런 편견도 없었다. 그에게 있어상해는 처음이었다. 나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남편에게 '상해의 모든 것을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렇게 여름휴가가 다가왔고, 설렘을 가득 안고 다시 상해로 떠났다.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 5박 6일의 일정이었다. 보통 상해는 3박 4일의 일정의 관광 코스가 많기 때문에 5박은 굉장히 긴 편이다. 이때 상해가 가장 더울 때인 것은 알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상해의 여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본 상해는 정말 새로웠다. 그리고 정말 많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변화로 인한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중국에도 적용이 되는 듯했다.
QR코드로 하나 되는 세상, 빅브라더와 편리함 그 사이 어딘가.
중국은 비대면 결제가 뉴노멀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몇 년 전부터 듣기는 했다. 알리페이, 위쳇페이 등 QR코드를 통해 결제를 하고, 심지어는 노숙자들도 QR로 구걸을 한다는 이야기다. 대중교통에서도 현금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는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현금 없는 버스 등) 한 중국인의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 돈은 실제하는 게 아닌, 숫자만 왔다 갔다 하는 개념이 된 지 오래되었다고 할 정도다.
실제로 가보니 음식점에서도 QR코드로 주문부터 결제까지 하는 곳이 많았다. 테이블에 있는 QR코드를
위챗페이를 통해 읽으면 몇 사람인지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해 메뉴를 주문하고, 추가하고, 결제하고 모두 한 자리에서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점원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메뉴 옆에는 친절하게 사진도 있고 양념을 추가할지, 맥주도 차가운 것 미지근한 것을 마실 건지도 클릭 하나면 가능하다. 비록 영어 메뉴는 제공하지 않지만 내 휴대폰 속 구글이 알아서 번역도 해준다.
패드를 통한 주문이 늘어난 한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패드의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고 결제할 때 카드를 꺼내 넣어 결제하거나, 삼성페이를 쓰거나 어쨌든 나의 결제 수단을 꺼내서 사용해야 하는 반면,중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스마트폰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큰 차이다.
예전에는 사진 없이 한자가 빼곡한 메뉴판을 받아 들고 아는 한자를 찾기 바빴었다. 손짓 발짓하며 점원과 소통하던 정감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뭔지 모르는 메뉴를 모험으로 시키고 뭐가 나올까 두근대던 추억도 있었다. 니하오 또는 후우웬(服务员)하며 직원을 불러야 한다고 연습했었던 지난날이 떠오르며 왠지 서글퍼졌다.
'소 우(牛) 자가 들어갔다고 소고기인 줄 알고 시키면 안 된다'며, 그러면 '황소개구리가 나온다'는 그런 중요한 지인들의 정보 또한 이제는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현지인들은 이런 방식이 더 편리할까? 중국어를 모르는 관광객들도 모든 메뉴 옆에 사진을 볼 수 있으니 편리할까? 중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던 초보 관광객이었던 나에게는 이런 QR 주문 방식이 더 어려웠다고 말하고 싶다. e 심을 통해 데이터가 넉넉했지만, 어떤 곳에서는 굉장히 느려 사진은 물론 글자가 모두 다 안 뜨는 곳도 있었고 어떤 음식점이던 메뉴가 워낙 많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손가락을 일일이 스크롤을 내리며 훑어보며 선택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는 훠궈집을 갔을 때 가장 불편했다. 훠궈에 집어넣을 재료가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고기 또한 종류부터 부위, 고기의 등급, 자르는 방식 등 정말 다양해 첫 판은 아주 두꺼운 불고기 거리 고기가 나와 내가 먹고 싶었던 얇은 소고기를 찾아 다시 시켜야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고기를 아무리 둘러봐도 어디 있는지 몰라 점원에게 옆 테이블의 고기를 여기서 골라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헌데, 내가 간 동북 음식점에서는 또 다른 일이 일어났다. 메뉴도 많고 QR로 주문해야 하는 것도 동일했으나
내가 먹고 싶었던 메뉴가 확실했기 때문에 사진이 다 뜨지 않아도, 메뉴가 아무리 많아도 카테고리만 잘 선별하면 메뉴를 주문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10여 년 전부터 동북 음식 매니아였던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목적과 목표가 제대로 있다면 그 길은 아무리 어려워도 가장 빠를 것이다"
내가 중국 메뉴판을 보고 깨달은 세상의 진리 중 하나다. 문제는 목표가 없는 것이었다. '뭘 먹어야 할지' 목적을 모르는 것이다. 음식점 메뉴에서 목적과 목표 의식을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미래의 목적과 목표가 없어 회사가 힘들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나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어쨌거나, 현금 없는 여행은 굉장히 편리했다. 내가 돈을 어디에 썼는지 파악하기도 좋았다. 알리페이 어플 하나로 계산부터, 지하철, 버스, 택시, 배달까지(만약 usim을 교체했다면 가능함) 가능한, QR로 하나 되는 세상이 바로 중국이다.
내가 듣기로 중국인들은 기차표를 사도 따로 표 없이 신분증만 찍으면 플랫폼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표를 따로 챙길 필요 없고 새로 어플을 깔 필요도 없어 굉장히 편리할 것이다. 비록 나의 모든 동선이 기록으로 박제되는 빅브라더라 할지라도. '신분증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시스템' vs '신분증만 있으면 모든 것이 통과되는 시스템' 범죄 예방과 편리함,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인간의 근본적 권리, 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