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을 했기에 알 수 밖에 없었던 문화차이가 몇개 있다. 중국 기업은 내가 생각하던 '외국계 기업'과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말은 아시아보다는 서양의 기업 문화가 짙다는 뜻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러웠던 문화는 출퇴근 인사를 따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와 다른 인사말도 처음에 굉장히 재밌었다. 교과서에서는 분명 '자오샹 하오(早上好)'라고 배웠는데, 현지의 직장인들은 '자오(早)'로 아침인사를 짧게 대신했고, 퇴근 시에는 옆자리 사람에게만 아주 작게 '먼저 감(시엔 조우, 先走)'이라 말하며 퇴근했다. 한국과 같이 따로 상사에게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따위의 말을 죄책감을 가지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점심을 먹고 이를 닦는 사람이 현저히 적었다. 어느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 가서 이를 닦는데, 잘 관찰해보니 점심 시간 동안 나같이 이를 닦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한 두명 정도 발견하여 개인차인가 싶어 이 이야기를 한국인 직원에게 했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 닦는 그 직원들은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는 애들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했지만, 그만큼 '한국인의 문화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중에 다른 국가 여행도 가보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공중 화장실(회사 화장실 포함)에서 이를 닦는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마다 조회 개념으로 대회의실에 모든 직원이 모여서 스트레칭을 하고 구호를 다함께 외치며 한 주를 시작하는 것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상해에 지내다 보면 아침 저녁으로 해가 뜨겁지 않을 때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태극권을 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침 조회도 이런 문화의 연장선상으로 보였다. 그렇게 이해하니 굉장히 가족적인, 집단 중심적인 모습으로 느껴져 신기하고 좋았다.
한편, 나는 인턴생활을 하며 상해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관광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다.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홍췐루에 처음 가본 나는 한국어가 적힌 형형색색의 간판들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곳은 한국보다 더 한국같은 곳이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의 한국 은행들과 많은 음식 체인점들, 그리고 포장마차와 같은 한국 감성의 술집이 곳곳에 위치했으며 한국식 대형 사우나도 있었다. 그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 앞에 싸이의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던 것이다. 그 당시 싸이 강남 스타일이 대히트를 칠 때였는데, 싸이가 오는 행사가 열린다고 앞다투어 홍보를 했던 것 같다. 그당시 강남스타일은 그정도로 위대했다.
홍췐루에 위치한 한국식 사우나에 그당시 함께했던 현지 팀원들과 같이 간 적이 있다. 핑크색 반팔, 반바지를 입고 불가마에 들어가 양머리를 하는 모습은 한국인지 상해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큰 규모감에 만족도가 더 높았다.
그리고 보통 때의 나는 소주를 거의 마시지 않는데(물론 소맥은 예외다), 정말 이상하게 홍췐루의 순대국밥 집의 소주는 술술 들어가, 갈때마다 반병씩 마셨다. 그 당시 한 병에 거의 7~8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지금 생각해보니 매일 점심을 삼각김밥 아니면 현지식 국수로 때웠으니 퇴근 후 먹는 따끈한 순대국밥에 소주 한잔이 얼마나 맛있었을까 싶다. 직장인에게 소중한 소주 한잔의 위로를 그 당시 꼬마 사회인이었던 나도 자연스럽게 체득했던 것이다.
2013년 초에 상해에 들어갔기 때문에 중국의 설날 '춘절'도 겪을 수 있었다. 중국 사람들의 귀향 행렬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듣기만 했지 경험해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보통 춘절때마다 거의 일주일씩 쉰다는 사실을 알고는 고작 두 달의 인턴이지만 쉬는 동안 상해에서 제대로 놀아보자는 생각에 나의 눈빛은 어느때보다 더 반짝거렸다. 그러나 왠걸, 춘절 연휴로 일주일을 쉬는 것은 맞지만, 그 전에 쉬지않고 연달아 7일을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건 한국회사여서 그런건지, 중국회사여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같이 인턴하러 온 한국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예 쉬는 사람, 일을 붙여서 더 하는 사람의 비율이 반반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7일 내내 일한 건 나밖에 없었다.
이때 춘절에 맞춰 중국 하얼빈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친구가 놀러오기로 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 절망했다. 친구와 같이 놀러갈 생각으로 지루한 시간을 버텼는데, 그 시간이 줄어든다니, 꼬마 사회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주5일도 시간이 잘 안간다고 느껴지는데, 어찌 7일을 연달아 회사에 출근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꼬마 사회인이었던 나는 아주 대견하게도 7일을 잘 버텨냈다. 그렇게 드디어 춘절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춘절의 상해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기다. 물론 관광을 하러 오기에 적합하다 할 수는 없다. 귀향하기 위해 문을 닫은 가게는 많은데, 그렇다고 딱히 사람이 빠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이 붐볐다. 그러나 복이 쏟아지라는 의미의 복(福)자가 거꾸로 달린 빨간 장식물이 수놓은 거리를 지날때면 화려하고도 이국적인 풍경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즐거워지곤 했다.
춘절의 또 다른 특징으로 폭죽이 있다. 이 시기엔 폭죽소리가 거리마다 들린다. 폭죽을 터트리는 이유로 재물신을 환영한다는 미신이 담겨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깜짝 깜짝 놀라고, 낯선 소리에 시끄럽다고 욕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사방에서 크고 작은 폭죽을 터트리기 때문이다. 길가는 뿌옇고 화약 냄새가 가득찬다.
하지만 나도 그 문화에 동참해보기로 했다. 사람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작은 폭죽을 샀다. '길에서 정말 터트려도 돼?'하는 걱정은 아주 잠시, 연달아 폭죽을 팡팡 터트려 본다. 폭죽은 바닷가에서 터트려야 맛인줄 알았는데, 상하이 길거리에서 즐기는 폭죽은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시기에 예원에 가는 것도 매우 추천한다. 청계천에서 볼법한 빛초롱 축제와 같이, 형형 색색의 연등이 예원 거리를 수놓기 때문이다. 이 또한 춘절이 아니면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춘절도 지나가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두달의 인턴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두번째 상해를 즐겼고, 내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2024년 7월, 나는 세번째 상해를 겪게 된다.
2013년 상하이 예원의 모습
2013년 상하이 예원의 모습. 밤하늘을 수놓은 홍등이 이뻤다.
2013년 상하이 예원의 모습
출근하기 전 버스 환승 지점에서 거의 매일 아침 사먹던 전병의 일종 猪肉饼(쭈로우삥)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