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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름 Aug 18. 2024

I ♥ SH | 환상과 현실의 간극을 마주하다

인턴을 가장한 상해 생활, 명과 암을 모두 겪다

나에게 두번째 상하이는 2013년이었다. 대학교 취업센터가 연계해준 2~3개월 짜리 해외 인턴이었다.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위해 해외 인턴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 곳이 '상해'였기 때문에 신청했다. 고작 두달짜리 인턴이 나의 이력서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 대한 고민보다, 힘든 취준 생활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다. 마침 2011년 상해에 같이 갔던 친구도 간다고 하길래 기쁜 마음으로 신청했고

그렇게 인생 두번째 상해를 즐기기 위해 나는 떠났다.


한국 B2C 모 유명 회사의 상해 지사에 배정받았다. 인턴을 뽑는 방식은 별다른 게 없었고, 학교 취업지원센터와 연계된 업체에서 학생들의 이력서들을 보내면 현지 기업에서 사람을 고르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사실 나의 중국어 실력은 전공으로 공부를 은은하게(?) 몇년 정도 했었지만 아주 형편 없었다. 2011년에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자신감과 생존 감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이었다. 흔한 HSK 급수도 없을 정도로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기업을 배정받은 직후 사람들은 모두 내가 어떻게 이 회사에 뽑혔을까 의아해 했다. 반면, 나와 함께 이 회사에 뽑힌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은 굉장히 좋은 대학 출신에 당시 중국어 자격증 중 가장 높은 급수였던 '新HSK 6급'이 있는 상태였다. 나와는 정말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인턴이 그렇지만 나에게 딱히 주어진 일은 없었다. 그 회사도 한국인 인턴은 처음 뽑아보는 것이라 했다. 지친 주재원 생활 속 프레시함을 전해줄 심심풀이 땅콩쯤 되는 느낌이었다. 업무 내용도 그저 대학생의 회사 체험이라 할 수 있겠다. 지사의 구성은 중국인 현지 채용이 대부분이었고, 본부를 관리하는 장들만 한국 주재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중 내가 배치받은 부서는 영업 마케팅 부서였는데, 현지 채용된 한국인 1명과 조선족 1명, 중국인 1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나름대로 언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 인턴을 위한 배려였다.


그 짧은 시간을 평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상해에서의 짧은 인턴생활이었지만, 참 고달팠다고 할 수 있겠다. 늦잠자서 가고싶지 않으면 쨀 수 있었던 대학생이 아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인턴으로서 두 달을 보냈기 때문일까.


첫째날의 낯섬과 충격도 잠시, 점차 적응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상해에서 일한다는 설레임과 오랜만에 왔다는 반가움은 찰나에 지나가고, 처음으로 해외 취업과 사회생활에 대한 차가운 현실을 대면했다. 사회인으로 지내며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현지인들의 말을 알아듣기엔 부족한 형편없는 언어 실력, 학벌에 대한 차별아닌 차별, 여유롭게 상해를 즐길 수 없다는 현실까지, 퇴근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느낀 자괴감에 혼자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에서 같이 온 친구는 다른 회사에 파견이 되었는데, 퇴근길 그 친구에게 온 문자가 아직도 생각난다. "나 찌아빤(야근)해, 먼저 저녁 먹어"

 

인턴을 했던 곳은 한국 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홍췐루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피스가 빽빽히 들어선 회사 단지였다. 상해 중심가에 그렇게 많았던 쇼핑몰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는 편의점만 하나 있을 뿐 흔한 식당도 보이지 없을 정도였다. 회사 건물은 겉에서 보기엔 삐까 뻔쩍하고, 아주 좋은 회사같아 보였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니 엘리베이터부터 화장실까지 외관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이 빌딩이 근처의 오피스 건물 중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점심시간도 특별했다. 근처에 식당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은 도대체 어떻게 점심을 먹는지 궁금했다. 관찰해보니 현지 여자 직원들은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고, 남자 직원들은 오토바이로 오는 중국식 도시락을 배달 시켜 먹었고, 한국 주재원들은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가 한식당에서 한국에 비하면 정말 비싼 순대국을 먹었다. 나는 영업부에 속해 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밖에 나갈 일이 많았는데, 현지인 운전기사와 함께 10원(당시 한화로 1800원 정도)짜리 국수를 먹고는 했다. 카레맛이 나는, 고기의 누린내가 은은하게 나는 우육면이었다. 그때는 '고수만 안들어가면 다 먹는다'는 주의였는데, 익숙하지 않은 맛에 처음 먹었을땐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 사무실에서 일할 땐 사무실 앞 패밀리마트 편의점에서 아침에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서 점심으로 먹었다. 이 삼각김밥마저 출근할때 미리 사지 않으면 점심에는 단 한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음료는 아침마다 보통 우롱차를 편의점에서 사서 마셨는데, 이때 처음 알았다. 단맛의 우롱차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차가 달다는 것은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데, 이때 없을 무자인 无(wu)자를 라벨에서 열심히 찾으며 달지 않은 우롱차를 사수하고는 했다.


그렇게 나는 환상과 현실 속 그 어느 지점에서 상해에서의 직장생활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2013년 상해의 일상
2013년 상해의 일상
이때도 와이탄이 가장 좋았다.
삼성을 발견하고 찍었던 것 같다. 2013년 상해 인민광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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