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를 처음 갔던 것은 2011년 여름이었다. 상하이 시내에 위치한 한 대학의 한 달짜리 중국어 교실에 가기위함이었다. 사실 중국어를 배우러 간다기 보다는 외국에 나가 그 당시 나름대로의 '한달 살기'를 합법적으로 하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 였다. 상하이가 내 마음 속 고향이 된 것은.
왜 그랬을까? 사실 상해의 첫인상은 좋음보다는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훨씬 많았다. 그것은 21살의 내가 처음 느껴본 문화적 다름에 의한 것들이었는데 지금 생각나는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 분리수거를 우리나라와 같이 하지 않는 다는 것
- 마트에서 손님과 직원들이 싸우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 것
- 식당에서의 자연스러운 합석 문화
- 마트, 식당, 교통비 등 저렴한 물가
- 아저씨들이 배를 자연스럽게 까고 다니는 차이니즈 비키니
- 태극권, 춤추기 등 체육의 생활화
- 지하철역에서 짐 검사를 한다는 것
- 어딜가나 넓어서 먼 것. 특히 지하철 환승 구간이 아주 긴 것.
사실 중국에 간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고등학교 시절 베이징에 수학여행을 갔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지내다 보니 체감되는 '다름'이 더욱 컸던 것 같다. 위에 나열했던 것들은 객관적으로 쓰기는 했지만 대부분 처음에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사실들이었다. 따로 적진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겨드랑이 털을 깎는 여자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느날은 대형 쇼핑몰에서 나레이터들이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레이터 답게 모델과 같은 기럭지에 화려한 노란색의 민소매 투피스를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쉴겸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이 팔을 활짝 올리며 춤을 추는 순간 나와 내 옆의 친구들은 입을 떠억 벌리며 놀랐던, 아찔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만큼 좋았던 기억도 많다. 중국인 푸다오(한국어로는 과외 선생님 같은 느낌)와 함께 한 길거리 산책도 생각난다. 연극영화과학생이었던 그녀는 용돈벌이 차원에서 푸다오를 했었는데1주일에 2번씩 만나며 중국어와 문화를 알려주었다. 어느 하루는 길거리를 같이 걸어다니며 '횡단 보도', '쓰레기통', '마트' 등 모든 사물들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어느날은 현지인들만 가는 양꼬치집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 양꼬치집은 마라탕 가게 처럼 내가 원하는 재료를 고르면 구워서 주는 곳이었는데, 매운 꼬치 양념을 해서 사장님이 내어주신 양꼬치와 부추, 팽이버섯, 가리비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강렬한 맛이었다. 그날 푸다오와 헤어진 이후 다른 한국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재방문을 할 정도였다.
어느 날은 태극권도 배웠다. 무림 고수같은 느낌을 풍기는 흰 머리의 할아버지 선생님이었다. 내가 워낙 몸치다 보니 수업을 거의 따라가지 못했었는데, 지금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그 선생님이 태극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괄약근에 힘을 주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태극권인데 무슨 괄약근?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게 맞나?"
중국어가 많이 서툴러 제대로 알아먹지 못했던 것일 수 있지만, 그 선생님은 손수 자신의 엉덩이를 텅텅 쳐가며 중국어로 뭐라 뭐라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때의 나는그것을 '태극권은 온 몸에 힘을 빼고 하는 운동이라 괄약근에 힘을 주지 않으면 중력의 힘때문에 치질에 걸릴 수 있다'고 알아먹었다.
성인이 된 이후 짧은 일본 여행만 하다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갔던 21살의 나는 와이탄의 야경을 보고 감격스러워 하기도 했다. 아편전쟁으로 강제 개항된 와이탄은 서양의 복고양식을 띠는 대형 은행들이 줄지어 동양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동쪽의 진주라는 뜻의 동방명주부터 시작된 높은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은 어린 나의 감성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물론 음식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다. 인민광장의 릴리안 에그타르트, 난징시루에서 먹었던 튀긴 만두 '셩찌엔', 입천장을 데일 정도로 뜨거웠던 샤오롱바오, 위구르족이 구워주는 길거리 양꼬치, 동북지역 사람들이 차린 식당에서 먹는 꿔바로우, 시홍시차오지단(토마토계란볶음), 디싼시엔(지삼선), 차오판(볶음밥)... 얼마나 자주갔으면 나중에는 가게 아주머니가 우리 한국인들만 봤다 하면 '꿔바로우?'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다시 상하이에 갔다. 2013년 초 겨울이었다.
2011년 와이탄 -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았다.
2011년 당시 상해 스카이라인
맛의 센세이션을 느꼈던 쩐주나이차(밀크티) COCO, 저 매니큐어도 상하이에서 한 것이다.
중국에서 많이 마시는 아이스티 - 쿵푸팬더 에디션
그당시 릴리안 에그타르트 - 지금과 패키지부터 모양까지 그대로다.
예전 한국에는 이런 대형 쇼핑몰이 많지 않았다. 신세계였던 중국의 쇼핑몰 - 아마 2013년 찍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