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문 목적은 다른 것 없이 관광 하나였기에, 사람 사는 풍경을 예전만큼 보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쉬웠다.
숙소 자체를 한국의 강남쯤이라 할 수 있는 '난징동루'로 잡았기 때문일 수 있다. 미슐랭이니 블로그니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맛집만 찾아다녀 그럴 수도 있다. 예전에 비해 위생적이고, 시원했으며, 서비스도 좋았지만
그만큼 싸고 맛있고 정감가는, 사람 냄새나는 곳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딜가도 쇼핑몰의 천국이었던 상하이.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는 점은 동일하다.
난징동루의 시그니처였던 지오다노 외벽을 가득 채운 'I ♥ SH'라는 그림이 지오다노의 폐업과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I ♥ SH' 표시가 사라졌단 이유만으로 그 건물이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물이었는지 알지 못하는 내 자신이었다.
"난징동루에 오면 늘 보았던 그 지오다노 건물이 대체 어디었지?"
오른쪽, 왼쪽, 열심히 고개를 휘두르며 건물을 찾던 나는 자신없는 모습으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저 건물이었던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아 그렇구나!" 천진난만하게 받아들였다.
'상해에 대해 잘 아는 게 맞긴 맞아?'
그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하지만 나는 여행 중 정말 다양한 곳에서 'I ♥ SH'를 볼 수 있었다. 넓은 상해 속 보물 찾기를 하듯, 'I ♥ SH'를 찾아낼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티셔츠부터, 난징시루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판매하는 텀블러까지. 감성은 다르지만 그 모습은 비슷했고,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스테디한 문구인 것은 확실했다.
난징동루에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굉장히 유명한 양꼬치 집이 있다. '옛날 옛적에'라는 이름의 양꼬치 집으로
한국 양꼬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으로 구워지는 꼬치 기계가 있고 가리비, 팽이버섯, 옥수수 등의 야채 꼬치와 삼겹살 꼬치, 베이컨 토마토 말이 등을 QR코드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더운 손님들을 배려해 이마에 붙이는 쿨패치도 주고 시원하고 값도 싼 다양한 생맥주(칼스버그, 블랑 등)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맛도 훌륭했고 편리하게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블랑 생맥주를 두 잔이나 비워냈지만, 예전에 신세계를 맛보아 열광했던, 미쳐서 하루에 두번씩 갔던 길거리의 양꼬치 가게가 어쩐지 그리웠다. 기계가 아닌 양꼬치 굽기에 특화된 위그루 출신 사장님이 구워준 양꼬치, 한번에 다섯 꼬치 이상 시켜서 손가락 사이 사이에 끼워 먹곤 했던 그 양꼬치. 팽이버섯과 부추를 이렇게 구워 먹을 수 있구나 깨달았던, 정감가던 그 곳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한 먹보같지만, 어딜가던 음식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도 하이네켄, 아사히, 버드와이저 등 해외 맥주가 즐비했다. 나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로컬 맥주를 즐겨 마시는데, 칭따오는 당연히 있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雪花, 하얼빈 맥주를 찾을 수 없었다. 아사히, 기린 등 일본 맥주가 다양하게 있어 '여기 중국 맞아?'라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였다. 식당에서는 다양한 중국 맥주를 팔았지만, 편의점에서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가 상당히 궁금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하철 광고를 하는 칭따오 120주년을 기념한 특별한 맥주를 발견했다. "저 맥주를 너무 마시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상하이 시내에 위치한 많은 편의점과 마트를 다녔는데, 한국에서 흔히 마시는 초록색 칭따오 맥주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주 반갑게도 남편이 푸동 IFC몰 지하에 위치한 마트에서 아주 사치스러운 칭따오 기념 맥주를 발견해냈다. 1L 짜리 맥주로 60元 정도 했던 것 같다. 아마 까르푸나 테스코 등의 대형 마트에 팔 확률이 높았을 테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관광지에서 현지 대형 마트를 찾기는 쉽지 않았기에, 푸동까지 가서 찾은 보람이 있었다. 그날 맥주만 5만원 어치를 샀고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바로 호텔로 돌아가야만 했다.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화려한 초록색 그라데이션이 가득한 칭따오 맥주를 열고 연거푸 들이켰다. 기념 맥주라고 더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예쁜 초록색 병에 취하고,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를 쟁취했다는 보람에 취했던 날이었다.
이렇듯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내가 기억하는 상하이와는 달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을 느낀 의외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새치기라 하면 부정적인 이야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새치기는 예전 향수를 바로 불러 일으켰던 나조차도 웃겼던 의외의 상황이었다.
동방명주를 올라가기 위한 엘리베이터 줄이었다. 아예 새치기를 할 수 없도록 동선마다 울타리로 쭉 이어진 곳이었다. 빙글 빙글 차례대로 줄을 잘 설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라인이 꺾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뒤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 사각지대를 이용해 앞으로 가려했고, 거의 1~2초 차이로 나의 몸을 날려 막아내는 해프닝이 있었다. 새치기 당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겹쳐 보이면서, 나의 줄을 사수하겠다는 투지가 불타올랐다. 처음에는 새치기를 막도록 시스템적으로 굉장히 잘 정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그래 여긴 상하이였어'하며 웃음짓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흠뻑 빠졌던 인간적인 상하이를 발견하다.
내가 좋아했던 인간적인 상하이를 발견한 어느날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난징동루의 한 쇼핑몰에 위치한 양꼬치집에서 배부르게 먹은 후 서비스로 제공된 한국의 서주 아이스크림과 유사한 맛이 나는 우유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오는 길이었다. 쇼핑몰 1층에서 노래 대회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대에 올라선 한 남성은 퇴근을 하고 바로 달려온 것이 분명한 현장복의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절절한 발라드를 부르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갈 수 있었지만 가만히 서서 결코 가창력이 뛰어났다고는 할 수 없던 그의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어렸을 적 중간, 기말고사가 끝나고 놀러 갔던 추억의 명동 밀리오레가 떠오르기도 했고, 10년 전 대학생 시절 상해에서 경험했던 내적 친밀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에게 "상해가 나의 마음 속 고향이야"라고 할 정도로 상해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의 추억이 겹쳐지며 포근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맛있었지만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에 살짝 아쉬웠던 양꼬치집
광고에서 본 후 찾아다녔던 칭따오 기념 맥주
상해의 시그니처, 동방명주
내가 가장 맛있게 마셨던 칭따오 순생 맥주
난징시루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발견한 I ❤️ SH
(좌)2011년 지오다오에서 구입했던 아이러브 상하이 티셔츠. (우) 2015년인가 뉴욕에서 오는 길에 스톱오버했을때 찍었던 지오다오의 외벽 중 일부. 지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