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여름 Oct 20. 2024

짜이찌엔(再见), 상하이!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상하이는 나에게 미지의 도시였다. 중국의 경제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나에게 상하이는 중국어라는 큰 언어 장벽이 있고, 비자도 발급받아야 하고, 심지어 구글맵도 사용하지 못하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진입장벽이 어쩌면 나를 더 설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발을 딛는 순간부터 이 낯선 도시의 묘한 긴장감이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왔다.


2011년 상하이에서의 첫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생생하다. 낯선 거리의 냄새, 사람들이 흘러가는 속도,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의 모습과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고 열심히 춤을 추는 나레이터 모델을 보았을 때의 충격도 아직 생생하다. 그리고 길거리나 지하철, TV 등에서 들리는 중국어는 마치 엄청난 리듬의 민요처럼 들렸고, 익숙지 않은 언어 속에서 나는 벙어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낯섦이 상하이에서의 시간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2013년 초, 중국 회사에서의 인턴 생활은 쉽지 않았다. 대학생에게는 너무도 낯선 업무 환경과 익숙하지 않은 언어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일들이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매일이 작은 도전이었다. 간단한 중국어조차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했다. 틀린 발음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팀원들 덕분에, 나는 한 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이해해 주려는 노력은 이 도시를 더욱 사랑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 도전 속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도 있었다. 현지인들이 보여준 친절은 내가 이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기숙사 관리인부터 회사 동료까지, 그들의 환한 미소와 나를 챙겨주려는 배려가 나에게 정(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했다. 마치 이방인으로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낄 틈조차 없도록, 그들은 나를 상하이 사람처럼 대해주었다. 그러한 친절들이 겹겹이 쌓여, 내가 힘든 순간마다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올해 여름, 나는 다시 상하이로 향했다. 익숙한 도시를 마주하며 느꼈던 것은 반가움과 동시에 코로나19 이후 바뀌었을 환경에 대한 묘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오지 않은 10년 사이에 스카이라인도 바뀌었다. 현재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건물인 '상하이 타워'가 2015년 완공하며 스카이라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했던 상하이의 모습은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침에 광장에서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 저녁에 선선해지면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를 10년 전으로 다시 데려갔다. 지금의 번잡한 고민과 걱정을 머릿속 서랍 한편에 단단히 넣어 놓고서, 10년 전 세상을 잘 몰랐던, 밀크티(쩐주나이차) 한 잔이면 행복했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 상하이를 즐겼다.


상하이 여행 마지막날 상하이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와이탄의 바에서 문득 '이번이 나의 마지막 상하이가 되면 어떡하지?', '상하이가 이제는 예전만큼 나를 끌어당기지 않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스쳐갔다. 다시 와도 이 도시는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상하이일까? 나는 그 경이로운 풍경을 보며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달랬다.


상하이에서 마지막 날 갔던 바의 풍경은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나는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며 맥주 한잔을 들이켰고,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어쩌면 이번이 나의 마지막 상하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도시와의 작별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삶은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비록 상하이에서의 날들은 끝이 났을지라도, 그 기억은 내 안에서 계속 빛날 것이니까.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반짝일 상하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나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짜이찌엔, 상하이!


아침 일찍 태극권을 하는 거리의 사람들
와이탄의 야경을 보기 위해 가는 사람들
상하이 여행 마지막날 와이탄의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바에서의 풍경
이전 10화 'Tea'의 왕국 상하이에서 차를 대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