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고
폴의 인생에 나를 대입해 봤다. 나는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을 사는 잘나가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다. 비록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도 내년엔 내 연봉이 무려 6배가 뛸 것이고 나를 교수로 임용하겠다고 난리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잘난 것 같다. 갑자기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피로해졌다. 검사 결과 폐암 말기다.
나같이 인생을 성실히 산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를 이 세계에서 거두는 것만큼 인류의 손실이 어디 있다고! 하늘이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데! 많은 사람 중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닥치는 거야..
나에게 폴의 상황을 대입해 본 결과,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절망과 원망, 분노, 억울함과 같은 울분이었다. 폴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못 느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폴이라도 당연히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다음의 대응은 나를 굉장히 놀라게 만들었다. 레지던트 복귀라니! 스위스 여행가기, 번지점프 뛰어보기, 싱가포르에 가서 싱가포르슬링 마시기, 뭐 이런 버킷리스트 따위가 아니라 레지던트 수료라니.
‘나아갈 수 없지만 나아가야 한다’는 폴의 외침이 암을 대하는 그의 굳건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주체적 삶을 사는 폴의 행보 중 레지던트 수료도 나를 놀라게 했지만, 가장 놀라게 한 건 2세를 가지는 것이었다. 본인이 떠나고 배우자 루시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는 오히려 애가 없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폴이 자신의 남은 삶의 기한을 “길어봤자 몇 년이야”라는 단정하는 것, 그 이상의 인생 계획을 실천하며, 항암 전 2세를 가지는 것이 병에 맞서 나가는 방법 중 하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폴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죽음까지를 인생의 완성으로 보았던 것 같다. 레지던트도 수료하고 책도 쓰고, 케이디도 안아보며 본인의 선택으로 존엄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폴의 죽음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은 독자인 나에게도 슬픔으로 다가왔지만, 폴이 쓴 내용만큼, 아니 오히려 루시의 에필로그가 더 와닿았다.
그녀는 “이렇게 내 사랑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는데, 말 그대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도 다른 방식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 지점은 다르지만, 폴과 루시가 함께 만든 인생을 케이디와 함께 여전히 열심히 이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내가 애정하는 미드 ‘굿플레이스’에 나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오늘의 독후감을 마치고 싶다.
Picture a wave, in the ocean.
파도를 상상해봐, 바다의 파도.
You can see it, measure it, its hight, the way the sunlight refracts when it passes through and it's there, and you can see it, you know what it is, it's a wave.
그건 볼 수도 있고, 잴 수도 있어.
파도의 높이나, 햇빛이 파도를 통과할 때의 굴절도.
그리고…그곳에 있지, 볼 수도 있고,
그게 뭔지도 알아. 그건 분명 파도야.
And then it crashes on the shore... and it's gone.
그러다 파도가 해안에 부딪히고… 파도는 사라져.
But the water is still there.
하지만 물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지.
The wave was just a different way for the water to be, for a little while.
파도는 물이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이었을 뿐인 거야. 잠시동안
That's one conception of death, for a Buddhist.
불교의 죽음관 중 하나야.
The wave returns to the ocean.
파도는 바다로 돌아간다.
Where it came from.
자기가 왔던 곳으로,
And where it supposed to be.
있어야 했던 곳으로
드라마 <굿플레이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