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 호스텔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영어공부
여행을 하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서투른 영어였습니다. 자잘한 일은 서툴러도 눈치껏 처리할 수 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숙소에 체크인을 하는 일들은 비슷비슷해서 몇 번 하다 보면 금세 익숙해지거든요. 하지만 이따금씩 호스텔에서 만난 외국인들과 정서나, 정보를 나누어야 할 때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이스 투 미츄’ 같은 가벼운 인사말을 나누고,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교환하고 나면, 지난 여정과 감상을 나누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깊어지려고 하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럴 땐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습니다.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겨우 멀리 와서 낯선 이들과 서로를 나눌 기회를 쉽게 잃어야 하니까요. 내 마음을 꺼내어 온전히 언어로 담을 수 없으니, 자유로이 여행을 하면서도 내 방에 묶여 있는 답답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한 번은 그라나다 호스텔에 머무를 때였습니다. 영국에서 오신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올리브색 반팔 스트라이프 셔츠 위로 짙은 회색 니트를 걸쳐 입은 모습이 참 잘 어울리시는 신사 분이셨습니다. 호스텔 다이닝룸에서 할아버지는 홀로 와인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마침 저도 리스본에서 사 온 소주를 한 병 들고 간 터라 각자 자리에서 우리는 술잔을 채웠습니다. 반병 정도 마셨을 즈음에 할아버지는 저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물으셨습니다. 술친구가 필요하셨나 봅니다. 서툴다 말씀드렸지만 괜찮다며 술안주 삼아 여행을 떠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은퇴 전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답니다. 평생을 책과 더불어 살아왔는데 읽을수록 책에 담긴 단편적인 작가들의 시선이 불편하셨다며 불만을 토로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대화 내내 물으셨습니다. '책과 세상, 자네는 어느 쪽이 답이 있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읽고 생각해도 선명해지지 않는 애매한 풍경들이 있는가 봅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스스로 질문한 답을 찾기 위해 노년에도 구도하는 모습에 저는 푸릇한 생기를 느꼈습니다. 호기심과, 추적. 두 활동이 꺼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끝내 청춘인가 봅니다. 후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신 할아버지는 아내분과 사별 후 차와 집, 가진 책을 모두 파셨답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오신 겁니다.
할아버지께 묻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좋아하시는 소설이나, 작가를 묻기에 그치지 않고, 그 이유까지 깊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왜 책이 아닌 세상에서 답을 찾고 싶으셨는지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혹은 당신께서 생각하시는 가족의 가치나, 사랑의 모습도 알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 마음속에는 세상이 어떤 진동으로 울리고 있는지, 손을 대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알아들 수 없는 말 사이로 들어가니 캄캄한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헤맸습니다. 결국 마음껏 묻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언어의 외연이 넓어지면 세상의 외연도 넓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쯤 어디를 여행 중이실지 궁금하네요. 할아버지께서 영어 공부를 해두라고 잔소리를 하셨어요. 정말 영어 공부를 해두어야겠습니다. 언젠간 다시 만나 당신의 정원에 새로 담긴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언젠가 학교로 돌아간다면 이런 마음을 아이들에게 잘 전하고 싶습니다. 영어를 왜 배우는지 이해를 못 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더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내가 필요했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내 교육이 훈육이 될까 겁이 납니다. 내 마음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하면 관계가 지루해지니까요. 모든 것들을 경험하며 필요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상상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러므로 언젠가 영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가 되면 여행 좀 다녀왔다고 '야, 선생님이 여행하다 보니까 영어가 필요하더라.'라고 말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숫제 새로운 세상에 홀로 떨어진 어린이의 이야기를 전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