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이크
:
스물 한 살, 군대 휴가를 나와 산 베스파는 귀엽고 클래식한 외관에 끌려 산 인생 첫 바이크이다. 여러 영화에도 나왔던 올드 베스파에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마침 울산에서 풀커스텀 PX을 파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연락, 포르쉐를 사려고 현금을 준비하는 형님에게 구매했다. 저도 포르쉐 사고 싶습니다…여튼 그 뒤로 쭉 두바퀴를 타고 다녔으니 어느덧 15년 짬밥의 라이더가 되었고, 몇 년 후엔 인생의 반 동안 바이크와 함께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자유롭게 어디든 가고, 언제나 시동을 켜 세상을 여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게 아직 내가 바이크를 타는 첫번째 이유라고 하면, 함께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은 두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간 여러 대의 바이크를 거쳐 지금 타는 클래식 바이크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베스파 클럽의 동갑내기 친구들, 팀48의 좋은 형님들, 그리고 취향과 평화 크루까지. 혼자에서 둘, 둘에서 여럿으로 즐거움을 공유하는 친구들은 자연스레 많아졌다. 클바 크루 사람들을 만나보면 대체로 ‘이쁘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바이크 스타일과 외형에 대한 미적 감각이 비슷하다고 느낀다. 개개인들이 가진것은 달라도 안목이 비슷하다는 것을 이제는 취향이 비슷하다고 해석한다. 취향이 비슷하기에 각자가 지닌 매력과, 고유의 색깔로 뿜어져 나오는 여러 공감대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고 함께 할땐 시간 가는줄 모른다.
바이크를 커스텀하고 어떤 스타일, 복장으로 다니는지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같은 기종은 있어도 똑같은 바이크는 없고,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로 감각을 뽐낸다. 옷 입는 것도 마찬가지. 이쁜 바이크를 아저씨처럼 타는 사람도 있고, 배달하는 바이크로도 멋지게 다니는 사람이 있다. 인간사 천차만별. “누가 타느냐가 멋짐을 결정한다.” 는 내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비싸고 유니크한 바이크를 탄다고 개똥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잘 어울리게 타는 것이 멋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스타일이라는 것은 기능을 넘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에, 비슷한 스타일과 브랜드를 좋아하는 라이더를 만나면 더욱 반가움은 물론이다. 단편적인 외향에 불과하지만 그것으로 어느정도 취향의 맞음을 가늠하기도 한다. 반대로 스타일이 좋지 않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라고 해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행실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기준'이기 때문에 누군가에 그 프레임을 덧 씌우지 않는다.
’색안경'을 절대 벗지 않는 기준도 있다. ‘주행 스타일'로 대변되는 주행 습관. 크루들과 투어, 라이딩을 할 때 대열을 이루어 주행하곤 한다. 출발하기 전에 대략의 순서를 짜고 그날의 규칙을 만들지만, 안전하게 타기 위한 우리만의 약속이기에 그것을 법처럼 철저히 지킬 필요는 없다. 안전하지만 자유롭게 라이딩을 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게 취미를 공유하는 우선법칙이랄까. 다만 필요 이상의 대열이탈, 정속주행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돌발행동, 같이 가는 라이더에게 위협이나 불편을 주는 행위, 주변 차량을 막거나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행위엔 얄짤 없는 편이다. 함께 타고 싶어 들어온 동호회에서 2년을 있어보니 특출난 행동을 하는 자들은 쉽게도 눈에 띄었다. 과속, 신호위반을 일삼는 라이더부터,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차들 사이로 질주하는 라이더, 뒤 대열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주행에만 바쁜 라이더까지.
내가 함께 타본 많은 라이더들 중에서 유독 뒤를 따라가기 싫은 친구들이 있었다. 귀신같이 촉이 발동했는지 ‘왜 저렇게 타고 다니지?’ 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들 대부분 도로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났었다. 그들의 사고소식을 들을 때면 으레 ‘그럴 줄 알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동행하는 자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라이더들은 크루에서 나가 혼자만의 라이딩을 하길 바란다. 앞을 먼저가는, 뒤를 따라가는 라이더 누구도 내 안전을 담보해줄 수 없는게 바이크 라이딩이고, 우리에겐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에. 실제로 그런 주행을 하거나, 주행을 떠나 어쨌든 주목 받고 싶어 안달난 관종들은 알아서 어떤 집단에서 나간다.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가 제일 잘 느낀다. 그런자에게 줄 관심과 에너지는 더더욱 없다, 아깝기도 하고. 물 흐리는 이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이들이 있고, 그런 자들에게 흔들릴 크루도 아니기에 우리는 언제나 평화롭다.
바이크를 함께 타고, 하나의 목적지로 가거나, 1박 2일의 여행을 가거나, 짧은 거리의 카페를 가는 일련의 행동들 모두 나에게는 교감이다. 초보 라이더의 실력에 맞춰 저속주행을 하기도 하고, 3-4대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의 라이딩은 고속으로 달려도 크게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아직 경력이 짧은 자는 배려하고, 같이 많이 타 본 친구들과는 신뢰가 쌓인다. 달리면서 그 사람의 주행스타일을 생각하고, 어떻게 바이크를 타기 시작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한다. 너와 나,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그렇게 친해지고 자주 보게 되면서 바이크가 아닌 여러 활동들을 함께하며 관계는 확장된다. 일주일에 다섯번을 봐도 매일이 재밌는데,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이 취미에 온전히 나를 불태우며 즐거움엔 끝이 없다는 걸 몸소 깨닫는다.
사람에게 다치지만 사람에게 위로받고, 삶에 치여 힘들때면 바이크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심신의 건강을 회복한다. 내게 두바퀴로 세상을 여행하는 행위는 위로이자, 회복이자, 자유다. 뻥 뚫린 도로, 두바퀴 위에서 느끼는 감정은 교감이자,생각이자, 이해다. 키를 돌려 세상으로의 여행, 그 속에서 헤엄친다. 언제나 딥다이빙.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평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