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커져버린 나의 커뮤니티, 퇴사 소원을 이루다
* 지금은 서비스 종료된 커뮤니티이며, 서비스 개발/운영에서 겪은 경험을 남기는 글입니다.
- 지난 이야기 : MBTI에 과몰입을 한 나머지 커뮤니티 앱을 만들어 출시해 버렸다.
처음 시작은 아주 미미했다. 앱을 오픈하고 나서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기능도 아주 엉성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홍보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했고 놀랍게도 간간히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조금씩 수정해나가려고 했었다.
앱을 만들기는 했지만 어떤 식으로 운영해 나가야 할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실 나는 커뮤니티를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돌아다니는 글을 보기나 했지 댓글을 남겨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커뮤니티를 덜컥 시작했을까...?)
우선은 16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최소 한 명씩은 있어야 하니까 지인들에게 가입해서 글을 좀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는 사람들을 다 동원했었다. 그래서 초창기 가입자들을 보면 모두 나의 지인들이다.
그렇게 글을 몇 개 올렸더니 신기하게도 모르는 사람들이 글을 하나씩 남기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또 지인들에게 댓글을 요청했다. ISFP에 대한 질문이 올라오면 잇프피 친구에게 SOS를 요청하는 식이었다. (빨리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줘 잇프피 친구야!)
모르는 사람들의 글이 올라오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아직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MBTI에 대한 관심도가 높긴 높은가 보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갑자기 다운로드수가 늘면서 커뮤니케이션 분야 다운로드 순위가 100위 안으로 올라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갑자기 가입자 수도 하루에 100명 이상이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유저들이 쓴 글들을 천천히 읽어보았더니 답이 있었다. 틱톡에 "MT"라는 MBTI 익명 채팅앱을 사용하는 영상이 인기 동영상이 되면서 덩달아 나의 커뮤니티도 다운로드 수가 늘게 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유저수가 늘다 보니 기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이제는 지인들에게 댓글을 요청하지 않아도 되었다. 커뮤니티에서 사용자 모으는 것이 가장 힘든데, 운 좋게 한 번에 사용자가 늘다 보니 유저들의 리텐션도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얻어걸렸다고 할 수 있는데, 익명 채팅앱으로 착각하고 다운을 받는 사람이 많아서 제거 수도 그만큼 많았다.
사용자들이 한 번에 확 몰리다 보니 새 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빨랐고, 댓글이 달리는 속도도 1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저들이 커뮤니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고, 특히 리스트를 당기면 새 글이 뜨는 형태가 사람들을 중독시키기 시작했다. 게다나 틱톡으로 유입된 유저들이 많다 보니 10대가 대부분이어서 남는 시간도 많고 중독에 취약(?)하기에 하루종일 앱에 머무르는 유저들이 늘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접속을 하는 듯했다. 다운로드 수는 2달도 되지 않아 어느덧 1만을 훌쩍 넘어버렸다. 커뮤니티가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운로드수가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적극적인 유저들은 불편한 사항들을 자세하게 피드백해 주었고, 기능 개선을 요청하는 리뷰가 많아졌다. 사실 앱 평가는 중요하기 때문에 리뷰 별점을 관리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잘 몰라서 초반에는 별점이 3점 중반 대였다. 기능은 당연히 부족했고 사용자들의 기대치와 달라서 낮은 별점을 주는 사용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크게 개의치 않았고 나쁜 리뷰도 그저 감사했기에 무작정 열심히 답글을 작성했다.
정성스럽게 긴 글로 요청 메일을 보내주시는 유저분들이 종종 계셨는데 그런 메일을 받을 때마다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다. 부족한 나의 서비스에 애정을 가지고 시간을 내어 피드백을 해준다는 것에 감사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댓글을 수정하는 기능도 없었던 앱에 이렇게 유저들이 모인 것이 새삼 신기하다. 요청하는 기능들은 대부분 반영을 하려고 노력했다. 앱 업데이트를 일주일에 두 번씩은 했던 것 같다. 그것도 서버/안드로이드/아이폰을 동시에 업데이트하다 보니 정신없이 개발하고 업데이트하기 바빴다. 또 신기하게도 요청하는 기능을 업데이트할 때마다 별점은 점점 높아졌다. 정말 사용자들은 솔직하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다른 앱으로 오인하고 유입된 유저들이 많았기 때문에 "1대1 채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처음에 1대1 채팅 기능을 넣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찾다 보니 N번방 사태 때문에 익명 랜덤채팅은 성인 인증을 하지 않으면 불법이라고 했다. MBTI놀이터에는 본인 인증하는 절차가 없었는데, 본인 인증이 들어가면 익명으로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는 장점이 사라지고 또 대부분의 유저들이 10대였기 때문에 성인 인증을 도입하면 유저층을 잃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로톡을 통해서 변호사 자문을 받아본 결과 "랜덤채팅"일 경우에만 성인 인증이 필수이고, 커뮤니티처럼 닉네임을 가진 ID가 있어서 유저를 특정할 수 있고, 대화 상대가 "랜덤"으로 매칭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쪽지 성격의 1대1 채팅은 불법이 아니라고 하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조심스러웠고 어려웠지만 알아보니 가능한 부분이었고 추후에 채팅 기능을 추가하였다.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앱은 손쉽게 5만 다운로드를 넘기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성장세에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게 되었고, 회사를 다니며 소소하게 운영하려던 나의 욕심은 어느덧 진지하게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커져있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밀려드는 요청에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밤새 개발과 문의 대응을 했고 매일 같이 새벽에 잠들었다. 퇴사해도 먹고살 길이 있겠지 싶어서 과감하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소원 성취...)
퇴사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것은 맞지만 진짜로 퇴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매년 말만 하던 직장인 3대 허언 "나 퇴사할 거야!"를 결국 이루고야 말았다. 친구가 내게 "10년 뒤에 돌아 보면 창업을 하지 않은 것은 후회해도, 잠시 퇴사를 한 것은 후회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갑작스러운 성장은 결국 독이 되어버렸다.
- 다음 이야기는 MZ세대와 커뮤니티의 특징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