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애미 Jul 28. 2024

고양이 식당 이야기

가지의 가시에 찔리다.

 여름철 반찬에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 엄마의 여름밥상에는 가지나물이 꾸준히 올라왔다. 

어릴 때는 가지나물을 싫어했다. 물컹물컹한 식감이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엄마는 가지를 맛있게 드시는 걸까? 

어느 날 그 맛없던 가지 나물이 먹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가지나물을 만들어 보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가지가 덜 쪄져 아린 맛이 났다. 

가지나물은 얼마나 가지를 알맞게 찌느냐에 따라 맛을 결정한다. 너무 찌면 흐물흐물하고 덜 찌면 식감이 질기고 아린 맛이 남아 맛이 이상하다. 


가지는 맛있다. 알맞게 잘 쪄진 가지를 손으로 쭉쭉 찢어 물기를 살짝 짜내고 고춧가루, 간장, 마늘, 파, 홍고추, 들기름 넣어 손을 조물조물 무친다. 마지막으로 통깨를 뿌린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양념은 조금씩 달라진다.  가지의 부드러움과 그 안에 배어 있는 짭조름하고 고소한 양념 맛이 일품이다. 밥에 올려먹어도 비벼 먹어도 맛있다.


가지는 생긴 것도 예쁘다. 진보라색의 매끄럽고 뽀득뽀득한 껍질과 초록빛이 살짝 도는 하얗고 폭신한 속살에 작은 씨가 수없이 박혀 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맞고 자라 영양이 풍부하고 이름처럼 '가지가지'하며 자라 모종 몇 개만 심어도 여름밥상을 풍성하게 책임져 준다.


겨울철 나는 발바닥이 동상에 걸린 적이 있다. 동네 할머니께서 동상에는 가지대를 우려 발을 담그면 낫는다고 하셨다. 거들떠보지 않던 겨울의 밭에는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열매를 내다 이젠  말라비틀어진 가지대가 눈발을 맞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가지대를 뽑기 시작했다. 가지대에는 군데군데 하얀 눈이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게 얻은 가지대를 한 발 손수레 실어 엄마와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뿌리의 흙을 털고 가지대를 꺾어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땠다. 그렇게 우려낸 가지대물을 대야에 담아 발을 담갔다. 그 덕에 별다른 통증이 없이 동상이 나았다. 동상이 심해 걸을 수 없을 때 병원에 가기 위해 엄마가 끄는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 먼저 학교에 들른 적이 있다. 처음으로 선생님을 만나는 엄마의 한 손에는 인사치레로 줄 메주콩 담긴 하얀 비닐이 들려 있었다. 엄마는 그때 그 선생님에게 우리 집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엄마의 말을 듣고 그 선생님은 조금은 그때의 나의 행동을 이해해 주셨으려나?



"엄마! ○선생 기억나?"

"알지!"

"나 중학교 때 우리 집에 토마토 사러 왔다며! 나를 그렇게 패 놓고 선 진짜 웃기다."

"박 씨는 최 씨 고집 못 이겨"


하지만 그건 고집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월부터 토마토 농사가 시작되면 나는 외할머니집에 가야 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그 시간이 나는 싫었다.  그러다 한 번씩 엄마가 보고 싶어 집에 가기도 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학교에 교과서를 못 가져가는 일이 잦았다. 그러면 그 선생님은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반아이들이 수업하는 중에 나는 혼자 왕복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 교과서를 가지고 와야 했다.  그렇게 다녀오면 수업시간은 이미 다 끝나있고 점심시간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학교를 무단으로 안 간 적도 있었다. 학교가 끝날 때쯤 몰래 교실에 들어갔는데 나를 교실 앞으로 불러 세워 반아이들 앞에서 인정사정없이 때리셨다. 

국민학교2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렇든 말든 모두 지난 일이다. 나도 잘한 것은 없으니까. 다만 내가 어렸기에 선생님께서 부모님에게 전화해 이유를 묻기라도 해 주셨더라면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서 사정이라도 했더라면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기에는 나는 너무 힘이 없었다.


그 선생님도 이제 많이 늙으셨겠지?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시겠지.


가지에 대한 글을 쓰다 빛바랜 상처를 드러내고 말았다. 가지 꼭지에 숨어있던 가시에 찔린 아프다. 

생가지를 먹은 듯 아린 맛이 맴돈다. 


수많은 상처로 마음이 시퍼레졌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크게 절망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장 난 채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원하든 원치 안 든 말이다.


'과거의 일에 슬퍼한다면 아직 당신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된답니다. 전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고 있어요!'


타인이 상처를 주어도 나는 나다. 

나는 상처를 딛고 잘 살아있다. 

상처를 상처라고 붙잡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면 된다.

시퍼런 색이 이젠 연해져 하늘색이 된 채로 살아가도 된다.


난 가지가 좋아졌는데 넌 어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