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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oo May 24. 2020

내 삶이라고 적었습니다.

쓰고 난 뒤 태우라는 책 때문에...

지난 5개월간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몇 줄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작년 말에 겁 없이 직장을 뛰쳐나오고 옮기기로 했던 회사의 책임자와는 대화상의 오해로 없던 일이 된 상태에서 미국에도 코로나가 덮쳤다. 즉,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 말만 듣고서 겁 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국제적인 질병이 발생하여 채용하는 곳이 더 없어졌다. (솔직히 다른 회사의 유혹이 없었더라도 시간만 좀 늦춰질 뿐, 어차피 더는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일 때문에 단명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한 마디로 난 멍청했다.


덕분에 쉴 시간이 생겼고, 7년 넘게 밤샘 근무를 하느라 망가진 몸뚱이는 느리게 그러나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지원했던 회사들이 지속적으로 정중히 거절하거나 아예 반응이 없기를 반복적으로 던져 주면서 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내가 밝아 보일 리가 없었을 터이고 매일 아침 쓰기 시작한 감사의 일기도 몇 개월이 지나면서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선물이라며 건넨 책이 "BURN AFTER WRITING"이었다. 자기 친구가 사용하고 도움이 되었다는 소식에 날 생각해서 사다 준 일기 형식의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도움이 되거나 뭔가 대단한 발견을 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울함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나를 위하여 준비해 준 정성에 열심히 쓰고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채워 나갔다. 책에 있는 내용들은 나에게 던져주는 질문들의 형식인데, 대부분의 질문들이 이미 받아 왔거나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봤던 내용들이었다. 다만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구체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은근히 재미는 있었다. 평소에도 타인의 말을 분석하고 정리하여 대답을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기보다는, 듣고 생각하고 입 다물고 있는 편이 더 편한 성격인지라 내 생각을 굳이 적어야 하는 부분은 오히려 노동에 가까웠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은 "MY INSPIRATION"이라는 제목을으로 한 면을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이라... 나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것들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단순히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일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며칠을 방치하다가 겨우겨우 생각해 낸 답은 '내 삶'이었다. 그리고 종교니 뭐니 하는 다른 단어들도 적어 넣긴 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내 삶이라는 두 단어였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분명히 난 살아 있고 죽기 전까지는 반복될 이 행위들을 살아간다라고 할 텐데, 이런 반복적인 모습들이 내 동기부여이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이었다. 내가 쓰고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지만, 돌이켜 보면 정말 무엇인가에 감흥을 받거나 자극을 받아서 살아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는 것이 산다는 것인가 보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막연한 목표도 없었고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자는 생각이 늘 지배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자녀들이 누군가에게는 꿈들과 목표들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게 할 이유가 되겠지만 나에게는 왜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너무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자신밖에 모르니 외부에서 오는 어떤 존재나 물체도 영향을 줄 수 없어서 인지, 아니면 너무 무디어서 느끼거나 생각할 줄을 모르는 것이지 잘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삶의 의욕이라 불릴만한 대단한 것이 없어서일까. 다 아니라면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지만 말자. 죽으려고만 하지 말자. 목표가 없으면 어떻고 감흥이 없으면 어떠랴 싶다.


누구의 말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고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은 거 맞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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