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 사재기라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젠 미국에서도 퍼지며 사망자도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내가 사는 주에서는 아직 확진자가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떤 경로를 통하여 전파가 되고 그 심각성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기에 불안한 건 사실이다. 그 간 한국에서 발생한 일들을 인터넷 뉴스로 접하여 그 심각성과 대처 모습 등을 보아 왔지만, 아직 미국은 이렇다 할 대책이나 대처 방안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다.
허리케인이나 홍수,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우리들은 어떻게든 준비를 하려 노력한다. 이곳에 와서 처음 목격한 토네이도의 모습은 자연 앞에 우리가 얼마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었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준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뒷수습을 하자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재난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어도, 전염병만큼은 아직 그 예상이 비교적 더 힘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전염병이 더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람이 만들었을 수도 있고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거나 옮겨질 수 있는데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재해를 바라볼 때 우리가 과연, 저건 충분히 통제가 가능해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일단 발생한 후에는 통제가 안 되니 우선 피하고 살아남자로 결론들이 모아지지만, 전염병은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못하기에 우리가 받아들이는 두려움의 크기가 다른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는 무기력 속에 경외심이라도 느끼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못하면 무력감이 더 커지고 그 무력감은 공포를 가중시키는 것 같다. 인재는 예방이 최선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어쨌든 준비를 한다. 그중 하나가 생필품을 미리 많이 사서 집에 모아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았다. 바로 화장지, toilet paper를 사람들이 사재기하고 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 같은 종류는 당장 의학적으로 필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화장지라니 좀 의아스럽다.
왜 화장지 일까? 내가 경험하기로는 미국에서의 toilet paper는 한국과는 그 쓰임새가 조금 다른 물건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다른 용도로 쓰임에 거부감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본 후의 뒤처리 용도로만 쓰이며 다른 용도에는 다른 이름을 가진 제품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개인적으로 보기엔 이건 그저 상술이다.) 심리적으로 뭐라도 사다가 쟁여놓아야 하는데 정확히 무엇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병에 걸리면 미국에서는 병원에 입원하기도 힘드니 집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파도 화장실은 가야 하고 다른 용품들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게 비축해 놓을 수 있는 용품이니, 화장지를 비축함으로써 위험을 대비했다는 약간의 위로를 받기에도 제일 적합한 제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며칠 전에 장을 보러 간 마트에서 간신히 9개들이 한 묶음을 살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두 개 중에 하나를 사 왔다. 마지막 하나는 누군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사가면서 운이 좋다고 느끼길 바랬고, 아시아인이다 보니 진열대의 휴지를 싹쓸이 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집에 여유가 없었으면 생각이 달라졌겠지만, 아직 한 달 정도는 아껴 쓰면 버틸양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산을 하고 다른 물건과 같이 차에 실으며 나도 뭔가 만약을 대비했다는 느낌이 들어 실소가 나왔다. 나도 어쩔 수 없구나 싶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진지하게 비데를 살까 고민까지만 했다. 너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