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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un흔 May 25. 2020

07. '-이고 싶어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이유

 초긍정의 아이콘이 되고자 했던 내 열정은 항암 3차를 시작한 이번 주, 약 3개월 만에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오늘 그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괜찮아야만 한다고 억지로 나를 다독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자에 해당할 지라도, 끝까지 나를 다독이며 이겨내야 하는 시간인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처음 바랐던 대로 나는 초긍정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첫 번째.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사람


 유방암 당첨과 동시에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검색어를 입력하고, 연관검색어를 통해 다른 환우의 일상을 엿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더해서 환우 카페에서 미리 겪지도 않은 수술과 항암 등을 미리 검색하고 종일을 겁에 질려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에 나는 절대 긍정적일 수 없었다. 애써 밝은 척하고 있었지만 굉장히 두려웠고 불안했다. 그리고 지금도 항상 좋은 생각만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의 일상과 고통을 엿보는 것을 멈추었다. 함께 괴로웠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글은 끝없는 고통과 우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비관적인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글들을 써 내려간 이들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과 슬픔을 한 풀이하듯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그들의 슬픔에 감정이 이입되어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혼란스러움에 브레이크를 걸어준 것은 과거에 유방암 환자였던, 한 블로거의 쪽지였다.

 수많은 비관적인 글들 중에 유일하게 긍정적이고 씩씩했던 그녀의 글은  '그래, 꼭 힘들지만은 않은 여정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일면식 없는 낯선 블로거에게 진심으로 용기를 주어 감사하다는 쪽지를 전하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나에게 답을 주었다.


"용기를 얻으셨다니 다행이에요.

 지금은 힘들고 무서우시겠지만, 다 지나가더라고요. 다 지나고 나니 그것 또한 별것 아니더라고요."


 비슷한 나이임에도 나보다 앞서 이 상황을 겪어낸 그녀의 "별 것 아니더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나라고 이까짓 암 따위 당당하고 씩씩하게 이겨내지 못할까! 이보다 더한 것들도 잘 이겨내고 살았는 걸!


 그녀처럼 나도, 같은 상황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막연히 그녀에 대한 동경심에 글을 한번 써보자라는 생각이 컸다.




 AC 항암 3차 후 일주일의 기간을 보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녀보다는 덜 용감하다.


 "항암 3차까지 벌써 1/3이나 지나왔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생각하니 견딜만했네요."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씩씩한 사람


 혈액형 얘기가 나올 때면 항상 가장 늦게 대답하거나 말하기를 꺼려하는 나는, 천재 아니면 돌+아이라고 불리는 마성의 AB형이다. 스스로는 트리플 A에 가깝다고 주장하지만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텐션이 높을 때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저 세상 텐션이다.


치료 중인 이 와중에도 그 기질을 발휘할 때면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밝은 척하는 건지.. 진짜 밝은 건지 모르겠네. 괜찮은 거 맞아?"라고 재차 물어댄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 스스로도 불과 얼마 전에 확신한 사실인데 '척'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람들 틈에 있을 때에는 정말 꾸밈없이 밝다. 봄비 맞아 싱그러워진 새싹처럼, 좋은 기운으로 가득 차서 그 어떤 것도 다 이겨낼 수 있는 무적의 상태가 된다. 그 힘으로 더 밝게 웃고, 씩씩하게 이겨내겠다 다짐한다.


 이해가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초긍정적인 이런 순간이 8할이라면, 나머지 2할의 순간은 혼자만의 동굴에 갇힌 시간이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란 사람은 중간이 없다. 나머지 2할의 시간 동안은 지구의 중심까지 땅을 파고 들어갔다 나오기 때문이다.

 

 브라우저에서 브런치를 열고 나면, 내가 파놓은 땅 속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순간이 온다. 초긍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마냥 우울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남들에게 초긍정적인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치료 이후에 이 시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스스로 대견하다 느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면 충분하다.






 세 번째. 이제 조금은 이기적인 사람


 아프기 전 내 입에는 본드처럼 항상 '미안해'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부록으로는 '괜찮아'가 있었다.

 들숨에 미안해, 날숨에 괜찮아 정도로 지겹게도 달고 살았다. 지인과 함께한 여행 중에는 이런 버릇 때문에 오해를 빚기도 했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눈 앞에서 나를 조롱하는 사람에게도 조롱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너무 착한> 사람이 아닌 실로 미련한 사람이었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찌그러진 깡통처럼 지내왔다.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미안할 때 해야 하는구나 싶었던 순간은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삼촌, 좋은 소식이 아니라서 미안해. 좋은 소식 이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해. 내가 좀 아프대."


 삼촌은 네가 아픈 게 왜 미안한 일이냐며 버럭 화부터 냈다. 앞으로 미안하단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했다.

 

 아차 싶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왔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미안해할 만한 일을 만든 적도 없었다. 오히려 사과받아야 할 일들이 더 많았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내가 받는 상처는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배려심, 이타심, 나보다는 남이 먼저' 말고 이제는 나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싶다.









 [ 뜬금없는 번외 ] 이기적 망상의 끝판왕,

"나는 코로나 19의 수혜자"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잃어버린 2020년이지만, 덕분에 나는 올해를 치료로 보내는 것이 덜 억울하다.

 하다 하다 코로나 사태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싶다며 긍정 기운을 끌어올려 위안을 삼는다.


 먼저, 외래 진료만 해도 몇 달을 기다릴 정도로 대기 환자가 넘치는 대학 병원의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수술과 항암이 빠른 스케줄로 진행되었다.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이니 한 여름에 '나 암환자예요' 광고하듯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어 편할 뿐 아니라, 여기저기 방역과 소독을 철저히 하는 덕분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또 나만 못 놀러 다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여행을 삼가고 있기 때문에 부러워할 대상이 없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당장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단점이라면..... '코로나 19 암환자 진료 권고 사항'까지 따로 있는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조심해야 하고, 더 무섭게 다가오는 이름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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